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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辛奇)를 아십니까?…김치는 파오차이가 아닙니다 [뉴스+]

, 이슈팀

입력 : 2022-10-13 07:00:00 수정 : 2022-10-13 13: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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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 김치를 파오차이의 일종으로 인식
언어적 습관에 중국 정부도 ‘신치’ 사용 꺼려
우리 스스로 우리 것 알리려는 노력 필요해

“맛있다. 이 배추가 주재료야?”

 

“김치야. 김치 알아? 한국 식탁의 기본 반찬이고 가장 대표적인 한국 음식이라고 할 수 있어.”

 

“어떻게 만드는데?”

 

“일단 배추에 소금을 뿌려서 하룻밤 절여. 그런 다음에 고춧가루, 마늘, 양파, 젓갈 등으로 양념을 만들어서 버무려.”

 

“파오차이(泡菜)구나.”

 

“중국에선 파오차이라고 하더라. 근데 김치는 중국 파오차이랑은 달라. 보통은 양념에 버무린 다음에 숙성시켜서 먹거든. 숙성이 중요해. 몇년을 숙성시키기도 해.”

 

“중국에도 비슷한 거 있어. 우린 다 파오차이라고 불러.”

 

 

연합뉴스

15년 전 일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대학시절, 중국인 박사생 친구와 김치전을 해먹으며 (영어로) 나눈 대화다.

 

나는 고교시절 제2외국어로 과목으로 중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김치를 중국에선 ‘파오차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중국어 선생님은 “김치는 파오차이로 번역하지만 사실 파오차이는 소금물에 채소를 절인 중국 음식이라 우리의 김치와 다르다”면서 “너희가 김치를 중국어로 말하고 싶다면 꼭 ‘한국의 파오차이’라고 소개하라”고 가르쳤다.

 

나는 그 때를 떠올리며 김치가 중국 친구가 아는 파오차이와 다르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슨 양념을 하든, 얼마나 숙성시키든 그에겐 다 파오차이였다. 그렇다고 그가 ‘한국의 김치도 중국의 파오차이다’라는 식의 주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절인 채소는 광범위하게 모두 파오차이라고 불렀고, 중국 음식이 아닌 김치를 자신이 아는 언어로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의 상상력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에 국한된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것은 아는 언어 중 가장 비슷한 걸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피자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나는 어른들이 피자를 두고 ‘이탈리아 빈대떡’이라고 부르는 걸 자주 들었다. 생각해보면 빈대떡과 피자는 얇고 둥근 모양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맛도, 만드는 방식도 전혀 다른 음식 아닌가. 그런데도 예전엔 편의상 그렇게 말했다. “피자가 뭐냐”고 물었을 때 “이탈리아 빈대떡이야”라고 대답하면 “아∼”하고 알아듣는 식이었다.

 

하지만 피자가 한국에서도 즐겨먹는 외식메뉴로 자리잡은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뉴스1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파오차이’는 ‘이탈리아 빈대떡’과 같다. 남의 나라 음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했을 때 어떤 음식인지 유추하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의 다른 점은 이탈리아 빈대떡은 한국에서 본명인 ‘피자’로 불렸고, 한국의 파오차이는 중국에서 ‘김치’로 불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표의문자를 사용하는 까닭에 외국어를 소리나는대로 담을 수 없다. 중국어에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최대한 비슷한 발음이나 뜻을 반영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야 한다. 오랫동안 중국어엔 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그 설명격인 ‘한국의 파오차이’로 불렸고 그대로 굳어졌다.

 

사실 파오차이는 향신료를 넣고 끓인 물에 채소를 넣어 절여 먹는 것으로 서양의 피클에 가깝고 김치와는 전혀 다르다. 김치가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으로서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만큼 중국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 ‘신치’(辛奇)다.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중국대사관, 수출업체, 언어학자 등의 자문과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쳤다.

 

그런데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중국에서는 여전히 김치를 파오차이로 부른다. ‘중국 식품 분류상 김치는 파오차이다’, ‘신치를 모른다’ 등의 이유로 한국 수출업체들이 중국에서 파오차이란 단어를 계속 쓰는 데다, 우리 정부도 무심했다.

 

중국의 유명 유튜버가 김장하는 동영상을 올리고는 '중국 음식'으로 소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유튜버 리쯔치(李子柒) 동영상 갈무리

문화체육관광부는 ‘관용적 표기’라며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하는 것을 인정했다가 지난해가 돼서야 겨우 신치로 변경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월 나트륨 줄인 김치 제조법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중국어 자막에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쓴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해외 투자 정보 웹사이트에서 중국의 파오차이를 ‘김치와 유사한 음식’이라고 소개하는 내용을 3년여간 게재해온 사실이 12일 알려지기도 했다.

 

중국 관영매체 관찰자망은 김치의 중국어 표기 논란에 대해 “한국 기업이 중국에 파오차이를 수출하면서 김치라고 표기할 수는 있지만 중국에서 파오차이를 어떻게 부를지는 국내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국식품안전국가표준에 맞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실상 중국 정부와 수입 업체는 김치를 계속 파오차이라고 부를 것이란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더라도 한국에선 달라야 한다. 김치를 중국어로 표기할 땐 ‘신치’를 쓸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파오차이를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치’를 쓰는 것이다. 김치를 ‘신치‘로 수출하고, 중국어로 김치를 설명할 때 ‘신치’라고 정확히 얘기하면 된다. 말은 습관이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지만, 여러사람이 쓰면 또 쉽게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편한대로 쓰다보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김치의 중국어 표기는 국제사회에서 영원히 파오차이일 것이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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