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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사람도 천개의 얼굴, 난 몇 개의 아버지 얼굴 봤을까”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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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07 07:30:00 수정 : 2022-09-14 21: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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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소설가 정지아는 삼 년 전 작고한 아버지의 기일에 맞춰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구례로 내려왔다. 각종 질환을 앓는 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2주마다 구례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아예 백운산 자락에 정착한 것이다.

 

한동안 구례 밖은 물론 읍내에도 자주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의 필요 때문에 가끔이라도 구례 읍내나 장을 찾지 않을 순 없었다. 읍내에 나가면 가끔 아버지 친구들을 만나곤 했다. 아니 아버지를 알던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다. 너, 운창이 딸내미 아니냐. 심지어 이름을 잊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너, 지아 아니냐. 아부지랑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겼구먼. 아버지 친구들은 굳이 그녀의 손을 끌고 허름한 밥집이나 선술집에 데려가 밥이나 술을 사주곤 했다. 전어회를 주문해준 아버지 친구도 있었다. 느그 아부지가 이거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냐, 긍께 한번 묵어봐라.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왜 구례에서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구례에는 아빠를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도, 자신이 적으로 알았던 사람도, 함께 산에 올랐다가 죽은 동지의 가족도 모두 살고 있는데. 나 같으면 구례에 살기 힘들 텐데. 자신을 모르는 곳에 가서 살 텐데....

 

구례에서 사람들, 특히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빨치산이 아닌 한 아버지이자 인간 정운창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는 구례를 떠날 수 없었구나. 구례는 아버지가 초등학교를 다닌 곳이었고, 철도원을 했던 직장이었으며, 가족과 친구, 이웃이 사는 생활공간이었다. 구례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빨치산이기 전에 한 명의 자식 운창이였고, 초등학교 동창 운창이였고, 멋진 옆집 청년 운창군이었으며, 멋쟁이 남자 운창씨였다.

 

서서히 깨달았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단지 이데올로기로만 보지 않는다는 걸, 이데올로기란 사람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자신이야말로 아버지를 잘못 생각해 왔다는 걸. 나만 아버지를 빨치산에 혁명가로만 가둬 뒀구나. 한 아버지로, 남편으로, 남자로, 그리하여 온전한 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생각이나 깨달음은 삼년 전인 2008년 5월, 기묘하게 각인됐던 아버지의 장례식 풍경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옛 빨치산 동료들이 숭고한 민족통일을 얘기하고 있고, 다른 쪽에선 우파 성향의 고향 친구가 제비가 먹이를 물어오듯 조문객을 데려오고, 빨갱이 새끼 잘 죽었다! 월남전에서 다리를 잃은 나이 지긋한 남성은 식장 입구에서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고.... 한국 사회의 압축판 같았던 장례식 풍경이....

 

“기묘했던 아버지의 장례식 풍경과 아버지가 구례에서 구례 사람으로 살아왔던 기억이 포개지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빨치산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소설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 작가는 5, 6년 전부터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은 쉬이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쓰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했다. 집필이 한창이던 3년 전인 2019년쯤에는 소설 속 ‘학수’로부터 자못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아버지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본 학수가 경로당에 들이닥쳐 난리를 쳤고, 노인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아버지의 ‘가오’를 확실히 세워줬던 일을, 아버지가 그 일 뒤에야 비로소 ‘씨’를 붙이지 않고 학수라 불렀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한없이 죄송했다. 아버지가 혁명가로 살았던 건 겨우 4, 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그 짧은 시간으로 아버지의 전 생을 재단했다니.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으면서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만 씌워줬다고 분노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혁명가이거나 말거나 그냥 좀 든든한 자식이 가오 좀 살려주고 이랬으면 좋아했을 아버지였구나를 깨달았어요. 아버지에게 되게 죄송했죠. 빨치산이라는 사실에 사로 잡혀서 딸로서의 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버지는 내가 어떤 딸이기를 바랐을까. 어떤 딸이었더라면 아버지가 더 행복했을까 기뻤을까. 스스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본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한국적 유머 감각, 남도의 구수한 입말을 구사해 ‘여자 이문구’라는 평을 받는 소설가 정지아가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를 들고 돌아왔다. 비록 1990년 히트작 『빨치산의 딸』이 장편소설로 분류돼 왔지만 소설보다는 논픽션이나 ‘실록’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이 사실상 그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부를 만하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숨지자 딸인 아리가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엮인 고향 구례에 내려와 상주로서 조문객을 맞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리는 3일간 상주로서 수많은 사연을 가진 조문객을 맞는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며 평생을 반목해온 작은 아버지, 평생을 군인과 교련 선생으로 일해 온 우파 성향의 초등학교 동창 박한우 선생, 전혀 아버지와 연결이 되지 않는 담배 친구인 노랑머리 소녀, 경로당에 가서 한바탕 난리를 피워 아버지의 ‘가오’를 세워준 학수.... 아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간 자신이 보지 못한 아버지의 다채로운 삶을 알게 되고 대면하게 된다. 빨치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속 깊은 친구, 친근한 아저씨, 다정한 남편, 멋진 남자, 그리하여 한 명의 인간을....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249쪽)

 

소설 속 ‘전직 빨치산’ 아버지는 입에 유물론이나 혁명을 달고 살지만 삶의 방식이 매우 진지해서 오히려 유머러스하다. 가령, 혁명을 외치면서도 정작 노동을 무서워하는. 장례식 3일간을 시간적 배경으로 했지만, 얽히고설킨 장례식장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해방 이후 70년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가 정지아는 왜 아버지의 죽음을 모티브로 장편소설을 써야만 했을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정 작가를 만나기 위해 지난 2일 구례 백운산자락 무수내에 위치한 작가 자택을 찾았다. 지난해 봤던 배롱나무 백일홍은 올해에도 여여했다.

 

−소설은 3일간의 아버지 장례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아버지 장례식이 어땠는가.

 

“보통 자식이 젊었을 때 부모가 돌아가면 부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런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자신의 고통과 상실감, 슬픔이 더 압도적이니까. 하지만 저의 경우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긴 했지만, 저도 사십대였고 아버지 역시 여든 둘이어서 거리감이 좀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잘 기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실록 『빨치산의 딸』을 쓰기 위해 두 분의 삶을 통째로 들었던 데다가 실제 책으로 펴내면서 보통 부모 자식과 달리 긴밀했던 것 같다. 이런 것이 기저에 있어서 장례식장 아버지 사람들을 조금 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인물들이 풍성하고 너무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탄생했는지.

 

“이번 소설에서 실제 인물은 아버지와 엄마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바꾸거나 가공의 인물이다. 여주인공 아리 역시 반 이상은 만들어낸 이야기다. 소설 속 인물이 풍성한 것은 먼저 아버지 옆의 인물들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제가 평생을 봐온 아버지 주변 친구를 일부 가져왔고, 아버지의 여러 지인을 한 사람으로 살려서 모은 것도 있다. 이를테면, 작은아버지 캐릭터 같은 경우는 실제가 아니지만, 지리산 자락에 그런 정도의 사연을 가지지 않은 집이 없다. 언젠가 어느 집에서 들었던 얘기 등을 합쳐서 나온 얘기다. 두 번째 제가 구례에 내려와서 만난 사람들이 소설 속 어떤 인물로 모여지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특별히 애정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소설 속 떡집 언니나 사촌 오빠 같은 캐릭터가 지금까지 제 소설의 대부분이었고,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참고 견디고 표현하지 않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좀 살아보니까,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신념도 있고,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기도 하고, 너스레도 잘 떠는 윤학수나 박동식 같은 캐릭터가 요즘에는 더 마음이 쓰인다. 앞으로도 이런 캐릭터들을 좀더 확장시켜 나가려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모든 사람에게는 다양한 측면이 있고, 그것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적 생각이었다. 제 아버지는 산에서 4, 5년 보냈던 사람이었는데, 산에서의 삶이 아버지 전체의 삶을 짓눌러 버렸다. 그 그림자만 걷어내고 나면 아버지 역시 자식이 예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평범한 아버지였다. 만약 우리 사회가 아버지에게 뭔가를 하도록 허용했다면 곧 잊혔을 것이다. 1980년대 운동권 인사들의 경우 결혼하고 취직해 다들 잘 살고 있지 않는가. 심지어 일부는 아예 우파로 옮겨서 활동한다. 빨치산을 과거의 붙박이로 살게 만든 건 그들에게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든 세상, 사회일 수 있다. 그들만 거기 과거에 화석이 된 채 멈춰 있다.”

 

요컨대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3일간의 장례를 통해 전직 빨치산 아버지를 보내는 딸의 반성적 이야기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의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자, 뒤늦게 아버지의 굽은 등과, 그 등에 새겨진 수많은 슬픔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자식들의 애절한 전상서로 읽힐 수도 있겠다. 다음의 「작가의 말」은 더 서늘한 이유다. “아버지. 아버지의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 딸인 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268쪽)

 

“빨갱이 딸 주제에….” 초등학교 사학년생 정지아는 어느 날 같은 반 여자 친구가 툭 내뱉은 한 마디에 자신의 삶이 밑둥부터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빨갱이의 딸’. 병보석으로 나왔다가 다시 투옥된 아버지가 당시 무슨 혐의로 형을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를 때였다.

 

소녀는 이전까지 공부도 잘했고, 백일장과 학술제 등에서 각종 상을 휩쓸던, 다른 무엇보다 인정 욕이 강했다. 어릴 적 작가가 꿈이었던 엄마와 말잇기 놀이를 하며 언어 감각을 키워왔고, 특히 세 살 무렵 엄마와 물이 흐르는 징검다리 위에서 경험한 잊을 수 없는 기억도 갖고 있었다. 물이 부딪히며 지나가는 징검다리를 보고는 깔깔거리며 엄마에게 말했더랬다. 물이 돌한테 간지밖을 멕이잖애, 그랑게 돌이 웃는 거재이. 엄마에게서 폭풍 칭찬을 받았고, 되새김하듯 반복해 그 얘기를 들어왔던 소녀였는데.

 

친구로부터 빨갱이의 딸이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1974년 그날, 소녀는 농협 창고에 쓰인 네 글자가 너무 거대해 보였다. ‘멸공방첩’. 세상에서 당당히 인정받고 싶었는데. 자신이 설 곳이 없어 보였고, 세계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이 나를 거부하다니. 세계와 자아의 선명한 분리, 세계와 나의 선연한 갈등.... 소설가 정지아의 원점이었다.

 

“빨치산의 딸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저에겐 굉장히 큰 장벽이었어요. 그 순간, 세계와 저와의 명료한 갈등이 화산처럼 폭발한 거죠. 작가로서의 자의식, 그러니까 작가로의 출발은 아마 4학년 그 어느 날이었을 것 같아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엄마를 졸라서 서울로 전학을 갔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누구에게도 고민을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었다. 부모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문학만이 그녀의 유일한 탈출구였고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위로받을 곳이나 친구가 전혀 없는 그때, 제가 유일하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문학이었어요. 문학의 세계에는 저만큼 괴로운 사람들로 가득했죠. 그래서 문학에 빠져들었어요.”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마구를 상대해야 했고, 그녀의 삶은 마치 소설처럼 세상에 꽂혀야 했다. 이어진 방황과 염세주의, 순천으로의 낙향, 재수 끝에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입학과 학생운동의 참여, 사노맹 외곽조직 연루와 3년의 수배, 자수 및 집행유예, 대학원 진학과 모교 강의....

 

그럼에도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팽나무처럼 기품 있게 그녀를 지켜준 문학에게서 위로와 위안과 희망을 찾게 된다. 등단 6년 전인 1990년 빨치산이던 부모의 삶을 담은 실록 『빨치산의 딸』을 펴냈다.  “이태 선생이 1988년 『남부군』을 출간하면서 ‘빨치산 붐’이 일었습니다. 이 선생의 책은 사실은 틀리지 않았지만, 바라보는 관점이 자유주의자의 시선이었어요. 빨치산들을 안타깝게 바라봤죠. 하지만 많은 빨치산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기에 억울하지 않다는 시각이었어요. 많은 이들이 빨치산 활동을 했던 부모를 찾아왔어요. 소설가 송기원 선생도 찾아왔는데, 아버지가 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하겠다고 하니까, 그럼 『빨치산의 딸』로 하라고 제목까지 정해줬어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썼죠. 문학적 묘사가 들어가 있지만, 내용은 거짓이 없는 실록입니다. 예를 들면 달이 훤한 밤이었다고 부모가 말하면, 저는 그것을 묘사한 것이죠. 『빨치산의 딸』로 작가로서 너무 빨리 풀렸던 것 같아요. 잊힌 역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썼는데, 사람들이 그걸 소설이라고 해서 겁이 나서 글로부터 도망쳤지요. 그렇게 10년 정도 글을 거의 못 쓰고 주춤했어요.”

 

1965년 구례에서 남로당 빨치산 출신 아버지 정운창과 어머니 이옥남 사이에서 태어난 정지아는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등단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행복』(2004), 『봄빛』(2008), 『숲의 대화』(2013) 등을, 청소년소설로 『숙자 언니』, 『어둠의 숲에 떨어진 일곱 번째 눈물』, 『노구치 이야기』 등을 펴냈다. 이 사이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 소설상, 노근리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세계를 조금 설명해 달라.

 

“늙은 혁명가 부모를 모시고 통일 전망대를 여행가는 딸의 시선을 그린 작품 「행복」 등을 비롯해 소설집 『봄빛』까지는 대체로 역사적 상흔을 가지고 고달픈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역사적 상흔을 전면으로 내건 작품은 몇 개 없고, 대체로 사소하게만 등장한다. 『숲의 대화』부터 조금 유머러스해지고 넓어지기 시작했고, 이번 소설집에서 조금은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작품 전반에 전라도의 구수한 입말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전라도 사투리도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광양 여수 사투리는 더 세고, 구례 사투리는 조금 약한 편이다. 순천 광양 순천과도 조금 다르고, 광주 사투리와 또 다르다. 목포와 해남 사투리가 제일 세고. 예를 들면, 목포나 해남에선 말끝에 ‘했어라우’처럼 ‘−우’가 붙지만, 구례에선 ‘−우’가 붙지 않고 ‘했어라’로 끝난다. 남도 말, 특히 구례 사투리에 대해선 기억이 한 80퍼센트쯤 되는 것 같다. 기억력이 빼어났고 무엇보다 말을 생생하게 재밌게 잘 하신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할머니는 순천에서 태어났고 열세 살에 첩첩 산골인 구례 반내골로 시집 와서 아흔한 살까지 사셨다. 가매를 타고 오는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바람을 펴서 첩을 데려 온 이야기를 비롯해 재밌는 이야기를 귀에 쏙쏙 박히는 사투리로 들려주시곤 했다. 이와 함께 구례 출신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구례 사투리를 공부하기도 했다.”

 

−소설 창작의 원칙이나 노하우가 있다면.

 

“저는 소설을 두 종류로 쓰는 것 같다. 대략 90퍼센트의 소설들은 머리가 아니라 경험에서 온다. 어떤 인물이나 상황, 이런 것들을 접할 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무엇인가 마음에 박힌다. 그런 것들을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인물, 장면, 상황 속에 내포된 본질이 생생해진다. 살면서 경험한 이야기 중 그 본질ㅇ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쓸 수 있다. 보거나 경험하자마자 이렇게 쓰면 되겠다 싶을 때도 있지만, 뭔가 모르는데 강력하게 기억에 남을 때도 있다. 그럴 경우 계속 머릿속에서 생각하다가 인물은 물론이고 줄거리와 에피소드가 나오고 에이포 한두 장 정도의 문장까지 쭉쭉 정리가 되면 소설을 쓴다. 그래서 쓰는 건 빠른 편이다. 제 소설은 어디까지 진짜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작품 속의 에피소드 대부분이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여러 경험을 모으거나 여러 사람의 경험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거나 극화시킨다. 1, 2년 정도 고민을 하면 경험하고 기억한 에피소드들이 주제를 향해 모이고, 저는 그것을 그냥 옮겨 적는 것일 뿐이다. 반면 단편 「존재의 증명」이나 「애틀랜타 힙스터」 등은 발상만 현실에서 따온 것이고 전달하고 싶은 주제에 맞게 이야기를 짜맞춘 경우다. 물론 이런 작품 속의 에피소드 역시 경험이 녹아 있다. 주제가 잡혀 있기 때문에 구상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대신 글을 쓸 때는 시간이 좀더 걸린다.”

 

−장편소설을 이번에 처음 썼는데. 장편은 단편과 또 다를 텐데.

 

“우선 밀도가 달랐다. 단편소설은 밀도가 촘촘한데, 장편은 휙휙 건너뛰어야 하는 대목이 많더라. 미시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좋아해 자꾸 단편처럼 나왔다. 단편 밀도를 갖고 쓰려고 했더니 진도가 나가지 않고 글도 재미가 없더라. 처음엔 조금 힘들었고, 마음에 들지 않아 덮어버리기도 했다. 몇 년 동안 못 쓴 이유 중 하나다. 사건 위주로 쓰는 대중소설은 속도감이 있는데 그런 것도 배워야 되겠더라. 장편소설은 총체성 측면에서도 단편과 많이 다르다. 이야기가 굉장히 방대하기 때문에 경험한 에피소드들만 갖고 쓸 수 없을 것이고, 공부도 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장편을 쓰기에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악인이나 교활한 사람, 사기 치는 사람, 폭력적 사람 등 다양한 인간도 이해해야 된다. 그런데 제 주변에서 악인을 별로 본 적이 없다.(웃음) 그런 인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장편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인물 유형을 넓혀가는 과정인 것 같다. 지난번 「숲의 대화」부터 인간을 조금씩 확장시키고 있다.(앞으로 기대가 크다) 장편을 쓸 수는 있겠지만, 결국 잘 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소설을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하는 인간이나 세상의 반영이다. 공부도 하고, 스스로 더 넓어지고 깊어져야 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

 

“개항에서 오늘날까지를 망라한, 한국 현대사를 다룬 대하소설을 쓰고 싶다. 한국의 근대가 어디에서 어떻게 열렸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좌익의 관점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 한국 현대사를 담은 이야기나 여성 3대와 같은 이야기들은 써보고 싶다.”

 

적당히 덥고 신선해 사람을 만나기 좋았던 그날, 백운산 자락의 무수내 구릉마다 배롱나무나 밤나무, 칡넝쿨, 강아지풀까지 온갖 생명들이 가지나 잎을 이리저리 뻗거나 흔들며 노래하고 있었다. 생명을, 우주를.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고.

 

발아래 시내에선 맑은 물이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아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너무 맑고 유속마저 빨라서 개구쟁이 가재가 없음에도, 물은 아래로 흐르고 또 흘렀다. 쉼 없이. 그래, 다 사정이 있겄제.

 

구릉과 시내 사이를 절묘하게 이어나간 산책로에서 풀들이 손을 뻗어서 인사하고 가끔은 칡넝쿨이 시비를 걸기도 했다. 밤송이들은 지친 듯 곳곳에 누워 있었고, 성미 급한 밤알 몇 놈은 옷을 벗고서 나체로 돌진해 왔다. 산책로는 이내 끊겼지만, 구릉은 끝없이 이어졌다. 무수내를 넘어, 백운산 자락 이곳저곳으로, 멀리 지리산으로, 그리하여 저 우주까지.... 긍게 사람이제.

 

따뜻한 시래기국 한 그릇과 소주를 앞에 두고, 현대사의 수레에 깔린 빨치산 아버지와 어머니, 그 수레를 되돌리려다 함께 치여 버린 작가, 그럼에도 우주 같은 소설과 문학 이야기도 끝없이.... 마치 먹이 앞의 제비 새끼처럼, 기자는 무심하게 또 묻는다. Well, open up your mind and see like me. 이때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Open up your plans and, damn, you're free....


구례=글∙사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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