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커피를 구분하는 데 꽃향을 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와이 코나 커피라면 재스민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와야 하고, 진짜 파나마 게이샤라면 장미향이 나야 한다는 식이다. 사실 커피에 따라 풍기는 꽃향기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꽃향기가 나면 품질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은 인류를 진화시킨 환경과 관련이 있다.
식물학자 윌리엄 버거는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의 등장 덕분에 인류는 호미닌에서 갈래를 타고 나와 진화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한다. 나무 위쪽에서 피는 꽃과 열매를 따기 위해 팔을 뻗고 양손을 번갈아 가며 나무를 타는 과정에서, 팔다리가 길어지고 손가락 힘이 강해졌다. 이러한 발달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호모하빌리스의 자질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 열매의 색을 구별하는 인지세포와 나무 사이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는 3차원 시각도 속씨식물이 안겨준 선물이다. 또 화려한 꽃의 주변은 곤충이 몰려들어 인류에게는 손쉬운 단백질 공급처가 돼 주었다. 수백만 년에 걸쳐 거듭된 환경과 적응이 우리 DNA에 꽃을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 짓도록 정보를 새겨 놓았다.

꽃은 인류에게 사후세계에 눈뜨게 한 관능적 도구이기도 했다. 1만37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의 라케펫 동굴 무덤은 시신을 꽃 위에 누이고 매장했음을 보여준다. 달달한 꿀물을 머금는 샐비어 꽃을 비롯해 다양한 들꽃과 향이 강한 박하와 골풀이 많았다. 꽃은 죽은 자를 위로하는 것이며, 사후세계에서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행위인 것으로도 풀이된다.
꽃은 구석기시대의 주거지인 청원 두루봉동굴에서도 나왔다. 진달래 꽃송이들이 한꺼번에 157개나 출토돼 한반도의 조상들은 인류 최초로 꽃을 일상에서 사용한 ‘품격이 있는 문화 인류’로 평가받고 있다. 두 사례 모두 식용식물의 씨앗을 선별해 심고 추수하면서 정착생활을 했던 신석기혁명 이전에 이뤄진 사건이다.
자연생활에서 인류가 마침내 추상성을 갖게 된 것은 꽃과 그 향기로 인해 반복적으로 형성된 정서 덕분인지도 모른다. 인류가 꽃을 만나는 순간 형성되는 긍정적인 감성은 한 잔의 커피에도 이어진다. 커피에서 꽃향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꽃향의 원인물질인 알데하이드, 케톤, 헥산올 등이 로스팅을 통해 커피에서도 생성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꽃은 많지만 커피마다 일일이 여러 꽃의 이름을 댈 필요는 없다. 현재 커피에서 감지되는 꽃향은 그 향이 불러일으키는 무게감과 농후함에 따라 블랙티, 캐모마일, 로즈, 재스민 등 4가지로 약속돼 있다. 커피에서 꽃향을 감상할 때는 감각을 넘어 감성에 기대는 게 좋다. 가볍고 신선한 티로즈, 달콤하고 경쾌한 라일락, 따스하고 향긋한 아카시아, 시원하고 화려한 라벤더…. 구체적으로 특정 꽃을 맞히려 하지 말고 좋은 커피라면 꽃향이 피어날 것을 믿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꽃의 이름을 대면 된다.
끝내 꽃향이 없다면 좋은 커피가 아니다. 그러므로 마시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지 못한다. 커피에서 꽃향은 단아한 여인이 지나간 자리에서 한 템포 늦게 피어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공적이지 않다. 따스할지언정 결코 미간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자극적이지 않다. 꽃향이 있어 좋은 커피라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것일까? 커피에서 느껴지는 긍정적인 감성이 꽃을 말하도록 재촉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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