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을 대표하는 아일랜드의 저가 항공사 라이언에어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위조 여권을 감별한다는 이유로 남아공 내 백인 소수가 쓰는 아프리칸스어로 간이 시험을 내 구설에 올랐다.
6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라이언에어는 영국, 아일랜드 등 일부 유럽행 항공편에서 남아공 승객을 대상으로 간단한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 퀴즈 형태의 시험이 남아공에서 백인 소수가 쓰는 아프리칸스어로 출제됐다는 점이다. 남아공의 공식 언어는 11개이며, 사업 등 공식적인 문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영어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언어는 남아공 최대 민족인 줄루족이 쓰는 줄루어다. 이 때문에 라이언에어의 행태가 지극히 인종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라이언에어 측은 “남아공 여권은 위조 비율이 높아 영국으로 여행하는 남아공 여권 소지 승격들은 간단한 설문에 응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 설문을 작성할 수 없을 경우 탑승이 거부되며, 항공료는 전액 환불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영어나 줄루어가 아닌 아프리칸스어로 진행된 이유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현지 매체에 따르면 라이언에어가 출제한 퀴즈는 15개로 남아공에 관한 일반 상식을 다루고 있다. 남아공에서 가장 높은 산, 대통령 이름 등을 묻고 있는데 아프리칸스어로 쓰여 있어 대부분의 남아공인은 읽을 수조차 없다.
아프리칸스어를 못하는 남아공 여권 소지 승객들이 라이언에어의 탑승을 거부당했다는 후기도 속출한다. 캐서린 브론즈는 아일랜드의 노크 아일랜드 웨스트 공항에서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 에식스로 가는 항공편 탑승을 거부당했다. 11살 아들과 함께였던 그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차별받는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며 “모든 사람이 저를 보고 있었고, 많이 울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영국 여권 소지자인 남편이 이틀 후 아일랜드로 데리러 온 뒤에야 영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남아공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네덜란드계 백인 지배층 말인 아프리칸스어는 식민의 잔재로 꼽힌다. 1976년 6월 16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흑인 빈민가 소웨토에서 촉발된 ‘소웨토 봉기’의 배경 중 하나도 교실에서 아프리칸스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에 대한 반기에서 비롯했다.
특히 남아공 흑인의 경우 지금도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곤 한다. 2015년 남아공 웨스턴케이프주 남서부의 스텔렌보스대학은 수업에서 아프리칸스어를 써 학생들의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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