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 R&D 연구자 적극 발굴
관리적 평가 탈피·규제 완화로
민간 참여 유도… 투자기반 구축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활동을 마무리하며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장관, 차관, 대통령실 인선이 이뤄지면서 새 정부의 모습과 방향에 대한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민간 주도의 경제, 디지털 플랫폼 강화, 에너지 전환의 연착륙 등 많은 정책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2실·5수석의 슬림한 대통령실을 지향하면서 과학기술수석이 없어진다는 데에 대한 과학기술 현장의 우려도 크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새 정부 출범 초기에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어떠한 정책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방향들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첫째,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연구개발(R&D)은 불확실성을 낮추어 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애초에 확실하고 명쾌한 해답이 존재한다면 굳이 R&D를 할 필요가 없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호프스테드는 그의 문화 상대성 이론에서 나라의 문화적 성향을 여러 가지 지표를 가지고 비교했는데, 그중에 재미있는 것이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성’이다. 미국의 경우 이 지표가 46점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85점으로 상대적으로 불확실한 것에 대한 문화적 회피 성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도전적인 R&D를 하는 연구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지원하고 스타 과학자를 육성하는 등 위험 감수성이 높은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둘째, 평가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국가 R&D의 경우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이 평가가 실수나 잘못을 찾아내고 지적하는 ‘관리적 평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이루어지는 많은 R&D 평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연구책임자에게서 찾아 비난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평가자의 역할은 비난이 아니라 개선할 사항을 함께 찾고 고민하는 동반자적 역할이 되어야 한다. 이 같은 ‘개선적 평가’로의 전환을 통해 연구책임자가 평가를 통해 성장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야 한다. 이공계 분야의 R&D는 모두 글로벌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에만 적용되는 규제가 있다면, 이 규제는 글로벌 경쟁을 불리하게 만드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그동안 R&D 관련 규제가 만들어진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 원인을 처방하지 않고, 현상에 대한 미봉책적 처방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접근을 되풀이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규제들은 글로벌 관점에서 영향평가를 실시하여 바로잡을 필요가 있으며 새로 만들어지는 규제는 신중하게 다양한 관점에서 그 필요성을 검토해야 한다.
넷째, 민간의 유연성을 활용해야 한다. 공정성과 책무성을 강조해야 하는 공공영역의 특성상 국가 R&D는 경직적으로 운영될 확률이 높다. 정해진 절차도 지키고 정부 예산회계 주기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R&D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전략 분야는 국가와 민간이 함께 투자하는 R&D PPP(민관 합작 파트너십)를 활용해 국가 재원이 민첩한 의사결정을 통해 전략적으로 투자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결성이 핵심임을 알아야 한다. 점점 복잡해지는 과학기술과 가속화되는 융복합 현상 때문에 혁신주체 혼자 혁신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혁신 생태계는 대학, 출연연(정부출연연구기관), 중소기업 중심으로 구축되는 경향이 있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조화, 전통 제조업과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공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산업 4.0’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의 핵심 혁신주체는 SAP, 보쉬, 지멘스 같은 대기업들이며,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도 1992년에 미국 DARPA(국방고등연구계획국)의 지원을 받은 바 있다. 인위적으로 배제하기보다는 모든 혁신주체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연결성 중심의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기술패권 시대가 도래하면서 R&D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새 정부가 명쾌한 R&D 정책 방향을 제시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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