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 기대 부응… 우리 위상 올릴 방안 고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해외 미군기지에 아프간 난민을 임시수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아프간 난민을 수용할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견해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국가 위상에 걸맞은 인도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난민까지 받느냐며 반대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이 논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을 도운 현지인에 한해 국내 이송문제를 검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23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한테 도움을 줬던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문제가 시급하다”며 “우리로서는 그분들에 안전한 피난처를 확보해드려야 하는 국가적 채무를 갖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설령 잠깐의 논란에 그치게 되더라도 이번 난민 수용 논란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난민 수용은 정의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이익의 관점에서도 설명돼야 한다는 점이다.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돕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카불공항을 이륙하는 미군 수송기에 매달렸다가 추락해 사망한 아프간인을 보면서, 돌아온 탈레반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컸으면 이렇게 무모한 탈출을 시도했을까 측은하게 여기며 돕고 싶은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웃을 돕는 일이 스스로의 이익을 해치거나 상당한 부담이 된다면 굳이 나서서 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난민 문제는 수용국의 입장에서는 첨예한 정치문제가 되곤 한다.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많은 수의 난민이 터키로, 또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여러 유럽국가에서 국수주의와 포퓰리즘을 자극해 정치적 후폭풍이 일었다. 다른 맥락이지만 중남미에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미국인의 반감이 커지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멕시코와의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기도 했다. 민주사회에서는 국민 여론이 난민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난민 수용이 부담에 그치지 않고 이익이 될 수도 있음을 국민을 설득해 이해를 구하지 않고서는 난민 수용이 자칫 소모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럼 난민 수용이 어떻게 이익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이익이 아니라 나와 너의 공존을 위한 계몽된 이익 개념으로 확대함으로써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사실 출산율의 급감으로 심각한 인구학적 위기에 봉착해 있어서 인구의 유입이 필요하다. 문화적 다양성은 또한 국제사회에서의 자산이 된다. 해외에서 한류스타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발산하는 여러 아이돌그룹의 성공 비결에 다국적 멤버의 영입이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난민 수용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기보다 우리 사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잘 정착해 사회에 기여하는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긍정적 접근이 낫다.
이어, ‘미국 이후의 세계’라는 새로운 변화 속에서 앞으로 한국 같은 중견국이 담당해야 할 부담과 역할이 커졌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는 20년 동안 이어온 ‘영원한 전쟁’을 더는 끌고 갈 수 없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미국이 이제는 과거처럼 세계의 경찰관 또는 정원사로서 세계 각지의 온갖 일에 관여하기에는 힘에 부친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철수 선언 이후 펼쳐지고 있는 카불의 대혼란은 갑작스레 힘의 공백이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중국과의 전략경쟁을 위해 인도태평양에 집중하는 외교안보전략을 추진하고 있어서 미국이 갑자기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빠진 미국은 이제 역량을 갖춘 동맹국이 세계질서 유지의 부담을 함께 지기를 요청한다. 아프간 난민 요청 논의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은 국제사회의 커진 기대에 부응하면서 우리의 역할과 위상을 높일 방안을 깊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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