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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은 술의 전쟁이었다 [명욱의 술 인문학]

입력 : 2020-12-05 18:00:00 수정 : 2020-12-07 11: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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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술이야기(상)
대표적인 와인 주산지인 보르도 지방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전쟁인 ‘백년전쟁’에는 노르망디, 샹퍄뉴, 아르마냑, 부르고뉴 등 술 주산지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픽스베이 제공

중세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전쟁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교황과 유럽 제후들의 이권이 맞아떨어져서 침략전쟁으로 전락한 ‘십자군전쟁’(1096~1272), 다른 하나는 유럽 패권을 노리던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1337~1453)이다.

이 중 백년전쟁은 당시 유럽사회의 기반이었던 봉건주의를 무너트리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영국과 프랑스에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이 일깨워줬다. 즉 근대 국가 기틀을 마련해준 것이다.

당시 유럽은 국가와 민족이라기보다는 영주, 귀족, 왕족으로 나뉜 세계였다. 영국 왕도 자신이 프랑스 귀족이라고 생각했으며, 프랑스 왕 역시 영국을 프랑스 산하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년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 왕실의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소고기를 뜻하는 비프(Beef)와 돼지고기인 포크(Pork)가 대표적이다. 소는 카우(Cow), 돼지는 피그(Pig)로 발음되지만, 귀족들이 먹는 고기에만 프랑스어로 불리고 그게 고착된 것이다. 하지만, 100년(정확하게는 116년)간 처절한 전투를 통해 영국은 영국인과 다른 프랑스인, 프랑스는 프랑스인과 다른 영국인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 백년전쟁이 술을 두고 싸운 전쟁이기도 하다. 백년전쟁은 스코틀랜드 왕위, 프랑스 왕위 계승,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지역) 지배권을 놓고 싸운 전쟁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와인 주산지 보르도(Bordeaux) 지방을 놓고 벌인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년전쟁 당시 보르도는 프랑스 땅이 아닌 영국 땅이었기 때문.

영국은 1066년에 노르망디 공국에 정복을 당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르망디 공국과 합쳐지면서 프랑스 서쪽의 알짜배기 땅 아키텐 지방을 가져간다. 1152년 프랑스의 아키텐 영주인 엘레노어가 영국 왕 헨리 2세와 결혼하면서 결혼 지참금으로 이 땅을 영국에 줬다. 게다가 엘레노어는 원래 프랑스 루이 7세의 왕비. 그는 프랑스 왕과 이혼을 하고 10살이나 어린 헨리 2세(당시 19세로 왕자 신분)와 결혼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영국이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양국 감정 다툼은 이때부터 시작했다.

엘레노어와 헨리 2세의 결혼으로 영국은 앙주 제국이라고도 불리며 프랑스보다 더 큰 땅을 가진다. 엘레노어가 영국에 준 아키텐 지방에는 보르도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프랑스에 땅을 계속 빼앗기고, 백년전쟁 직전에는 보르도 지방만 남게 된다. 결국 보르도 지역에 대한 분쟁이 백년전쟁의 대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보르도 지방은 영국의 젖줄이었다. 보르도 지방에서 나오는 와인을 통해 영국은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였고, 이는 영국 전체 재정에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프랑스는 이러한 보르도 지방이 달갑지 않았고, 결국 술을 놓고 116년간 양국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게 된다.

양국의 전쟁으로 사과 발효주 시드르로 유명한 노르망디, 샴페인으로 유명한 샹파뉴, 브랜디로 유명한 아르마냐크, 고급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방까지 모두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한마디로 백년전쟁은 술 주산지들의 전쟁이었고, 이들 지방을 가져간 프랑스는 전쟁 이후 프랑스 술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된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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