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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엽의고전나들이] 지성이와 감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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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22 23:52:49 수정 : 2020-10-23 0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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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감천이와 지성이가 살았는데, 감천이는 맹인이었고, 지성이는 앉은뱅이였다. 둘은 아주 친해서 어디를 가든 함께 다녔다. 감천이가 지성이를 업고 다니면서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 둘이 길을 가다가 금덩이를 하나 발견했다. 그러나 서로 양보하기에 바빴다. “네 눈이 없었다면 못 찾았을 테니 네가 가져.” “내 다리로 여기까지 안 왔다면 찾지 못했을 테니 네가 가져.” 둘은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그냥 있던 곳에 놔두기로 했다.

그렇게 둘이 다니다 장돌뱅이 하나를 만났다. 장사가 잘 안돼서 심통이 난 듯했다. 둘은 그 장돌뱅이가 매우 딱해 보였다. 그래서 저쪽으로 가면 금덩어리가 있을 테니 가져다 쓰라고 했다. 그러나 장돌뱅이가 그곳에 가보니 금은커녕 뱀만 한 마리 있을 뿐이었다. 그는 화가 나서 가지고 있던 칼을 꺼내 뱀을 두 동강 냈다. 그는 곧장 지성이와 감천이에게 되돌아가서 화풀이를 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지성이와 감천이가 그곳에 가보았을 때 금덩이가 둘로 나뉘어 있었다. 둘은 금덩이를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그 뒷얘기는 들으나 마나이다. 부자가 되어 잘살았다는 걸로 끝내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지성이감천이’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는 애써 살아온 보람이 작기 때문이다. 지성이와 감천이는 그 금을 가지고 절에 갖다 바쳐 치성을 드리고, 지성이는 일어서고 감천이는 눈을 떴다. 그들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남에게 양보하기 바쁘며, 저만 못한 이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뻗었으며, 제 몫의 복마저 세상으로 되돌릴 때, 불행이 말끔히 씻긴 것이다.

이야기니까 그렇지 실제 이런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필요는 없다. 실제 가능한 일만 이야기로 만들 것 같으면 세상 재미없는 게 이야기일 터이다. 문제는 ‘지성’과 ‘감천’의 수준과 깊이다. 제 한 몸만 잘 되게 비는 지성이라면 이기심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착하게 살 테니 복을 달라고 빌면서도, 친구에게 양보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길 줄도 모른다면 위선과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금을 모으는 것이야 인간의 노력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맹인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은 하늘의 몫이다. 어지간한 감천이 아니고야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면, 간절한 소원이라며 입으로 빌어대기만 해봐야 말짱 헛일. 지성이어야 감천이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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