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록하지 않은 환경탓… 사람들의 기질 ‘터프’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투우 경기 지속
절벽 전망대 마을 한눈에… 궁전의 길 옛 저택 즐비
살바티에라 후작 궁전 등 바로크 양식 위풍당당

협곡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로 한낮의 열기를 식히고는 강한 기질의 도시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호텔 밖으로 나서자 하얀 외벽의 투우 경기장이 마주보고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경기장으로 거대한 위용과 아름다운 외벽을 자랑한다. 투우장은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독특한 석조 건축물로 매끈한 돌기둥을 따라 아치가 이어져 있다. 지붕을 덮고 있는 아라비아 스타일의 타일은 한때 이곳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땅임을 보여준다.
현대에 들어 동물학대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스페인의 많은 도시에서 투우가 금지되어 있지만 론다에서는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투우가 실시된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피가 튀는 살육 장면을 즐기는 것을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경기장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이곳에서 벌어질 투우를 생각하니 떠나는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투우장을 나서면 절벽 꼭대기에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보는 시각과 위치가 변해도 협곡과 다리, 그 아래 들판 풍경은 여전히 놀라울 만큼 아름답다. 바닥까지 벽돌로 쌓아 협곡과 하나가 된 듯한 누에보 다리를 건너 레이모로 궁전으로 들어선다. 스페인어로 ‘무어왕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18세기에 지어졌으며 이슬람 왕궁의 유적 위에 지어지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1910년쯤 파르센트 공작부인을 위해 정비된 아름다운 궁전은 여전히 볼 수 없지만 협곡이 내려다보이는 정원은 일반에게 공개된다. 프랑스 정원 전문가가 중세시대 무어인의 정원양식을 따라 지었다는 정원은 아름다운 꽃들과 벽돌들로 치장되어 있으며 협곡 너머의 마을을 감상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장소이다.
궁전의 길을 따라 걸으면 성모 마리아 시장 교회가 나온다. 가톨릭 군주제에 의해 1485년에 건설을 명령했지만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고 한다. 모스크인 듯 교회인 듯 아랍과 기독교의 특징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로마 사원이 있던 자리에 지어진 모스크는 다음 세기 동안, 내부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장식으로 풍성해졌다. 스투코와 말발굽 아치가 있는 무데하르 양식은 후에 기독교 예배를 위해 사용되었다. 로마사원과 모스크, 성당이 하나로 뒤섞여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의 기둥을 장식하는 조각품들을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큰길을 따라 내려온다.

길을 따라서 옛 귀족들의 저택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살바티에라 후작 궁전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이 길은 수세기 동안 이슬람 왕과 기독교 왕들의 거주지였고, 오늘날에는 이 도시의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 몬드라곤 궁전과 론다 스타일 연철 발코니를 볼 수 있는 살바티에라 후작 궁전 등이 위치해 있다. 고딕 무데하르 장식과 예술 정원을 자랑하는 무어식 저택은 마치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니 아랍식 목욕탕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론다 마을의 한 구석에 있는, 수세기 동안 예외적으로 보존된 숨겨진 보물이다. 목욕탕들은 전통적인 무어 물레바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인접한 라스 쿠알레스타스 개울에서 물을 공급한다고 한다. 이 같은 방식은 13세기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현재까지도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전통 아랍식 목욕탕을 둘러보고 다시 누에보 다리로 향한다.

누에보 다리 근처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쇼핑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가죽제품을 전시한 매장들과 레이스로 장식된 소품가게들이 발길을 붙든다. 하얀실로 얽힌 식탁보가 눈길을 끌었지만 결국 실용적인 가죽제품을 기념품으로 사기로 했다. 매장에 들어선 순간 어설프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주인장을 보니 역사 뒷골목에서 현실세계로 순간 이동한 듯하다. 반가운 인사말에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적극적인 권유와 설명으로 예기치 않게 큰 물건을 사들고 가게를 나선다. 반갑게 흔드는 손짓을 보니 스페인에서 아랍의 상술에 넘어간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없이 쇼핑을 마치니 커다란 쇼핑백이 손에 들려 있다.
누에보 다리를 건너 들어온 호텔에서 잔뜩 들린 두 손의 짐을 풀어놓고 스페인 늦은 저녁 시간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는 현대적인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론다의 현대적인 거리 모습이다. 건물들이 마주한 중앙거리에는 테이블이 차려진 야외 레스토랑으로 시끌벅적한 저녁의 론다가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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