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연이 안아보고 싶어. 엄마 나연이 너무 보고 싶었어. 우리 나연이 좋아하는 쪼리 신었네?”
‘보고 싶다’는 말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상태에 있단 말이고, 누군가를 보지 못하는 가장 극단적인 상태는 죽음이다. 불가능을 넘어 죽은 이를 보고 싶은 마음은 가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이 마음 속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세계를 현실에서 열어줬다. MBC 스페셜이 방송한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다.

장지성(여)씨에게 셋째 딸 ‘나연’양은 늘 7살이다. 2016년 가을, 목이 붓고 열이 난다던 나연이의 병명은 혈액암의 일종인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란 희귀 난치병이었다. 결국 나연이는 그해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하루도 나연이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장씨는 MBC 제작진을 만나 나연이와 재회하게 됐다. 그리운 사람 또는 되새기고 싶은 추억을 재현함으로써 위로를 선사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던 제작진의 마음과 나연이를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은 장씨의 간절함이 통했다.
수 개월을 거쳐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지만 실제로 장씨가 가상의 나연이를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제작진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VR기술을 통해 나타난 나연이를 장씨가 안고 만지려 손을 뻗을 때 시청자도, 제작진도 눈물을 흘렸다. 방송을 봤다는 직장인 A씨는 “아내와 싸우고 혼자 보다가 펑펑 울었다”고 털어놨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종우 PD는 “상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 몰랐다”며 현장을 첫 번째 시청자로 바라본 분위기를 전했다. 김 PD는 “손을 내미는 동작 등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어머님이 ‘몸이 먼저 나가는’ 사랑을 보여줘 저희 제작진 모두 충격을 받았다”며 “이런 장면과 감정을 만들고 공유한다는 느낌이 벅찼다”고 촬영 소감을 말했다. 이어 “온도 등으로 촉각도 더 실감나게 구현하려 했는데 적용하기 직전에 작동에 실패하는 등 준비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이런 부족함을 장씨의 간절함이 다 채운 것 같다. 모성애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무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김 PD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말하고 싶은 주제가 결국 ‘삶’과 ‘죽음’이라고 부연했다. 제작 초기 단계에는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촬영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란 점에 의미를 뒀다고 한다. 이제는 단순히 ‘재현’의 단계를 넘어 삶과 죽음을 뛰어넘어 어디까지 교감이 가능할지 목격하는 것으로 다큐멘터리의 의미가 커졌다.

이번 다큐멘터리가 기존에 수없이 다뤄진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을 다뤘음에도 새롭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는 아직은 대중에게 낯선 VR 기술을 접목한 덕분이다. 방송을 시청한 장모(27)씨는 “VR을 게임으로는 해봤는데 다큐멘터리에 활용한 게 신선했다”며 “이렇게 좋은 방식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PD는 “추억을 되살려보자는 모티브를 갖고 VR로 이것을 구현할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다”며 “VR은 단순한 시청용 콘텐츠가 아닌 경험 자체를 제공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마다 경험이 제각각이듯 이 기술도 사람에 따라 체감하는 시간 축과 상호작용 자체가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김 PD는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가 과학 영화인 동시에 가족 이야기인 것처럼 저도 새로운 기술(과학)을 활용, 아이를 잃은 뒤에도 남은 사람들(가족)끼리 웃기도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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