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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광복 이후 한국문학의 풍경들

입력 : 2019-11-29 03:00:00 수정 : 2019-11-28 20: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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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 재조명 책 두 권 눈길 / 김남일 ‘염치와 수치’ / 염상섭·이광수·변영로·김동인… / 이들은 어떻게 근대를 열었나 / 작품보다 작가 극적 삶에 초점 / 이봉권 ‘방전탑의 비밀’ / 일제에 맞선 조선과학자 그려 / ‘한국근대문학총서 틈’ 첫 책 / 가려진 대중문학 새롭게 조명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 해방공간으로 이어지는 기간 한국 문인들은 이 격동의 근대사를 문학 작품에 어떻게 새겨 넣었을까. 문학의 가장 큰 매력이자 특징인 삶의 세목에 대한 기록이야말로,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만 그 시대를 환기하는 차원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한국 근대문학은 일부 연구자들이나 전공 학생들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일반 독자는 물론 작가들조차 교과서에 나온 제목 정도만 기억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촉구하는 의미 있는 책 두 권이 눈길을 끈다. 소설가 김남일이 외국 문학은 줄줄이 꿰어도 정작 우리 근대문학은 몰랐다는 통절한 반성을 바탕으로 집필한 ‘염치와 수치’(낮은산), 한국근대문학관에서 한국 근대문학의 ‘틈’에 끼여있던 대중문학을 시리즈로 펴내는 ‘한국근대대중문학총서 틈’의 첫 책 ‘방전탑의 비밀’(홍시)이 그것이다.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무지를 통탄하면서 ‘염치와 수치’를 펴낸 소설가 김남일. 그는 “교과서에 박제된 이미지 외에 우리가 우리 작가들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면서 “한국 작가로서의 부끄러움으로, 고향을 찾아가는 탕자의 심정으로 한국 근대 문학을 탐독해 나갔다”고 밝혔다.

◆한국 근대문학의 풍경 ‘염치와 수치’

“나는 서울 토박이 염상섭이 왜 서울을 그토록 싫어해서 ‘구더기가 들끓는 무덤’으로 불렀는지 몰랐고, 이태준이 조선의 거의 끝자락에 아비 어미를 묻은 고아였다는 사실을 들은 둥 못 들은 둥 했으며, 김기림이 왜 그토록 하염없는 눈을 그리워했는지 그 배경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김유정의 지독한 폐병을 몰랐으며, 최서해의 지독한 빈궁을 몰랐으며, 나혜석의 지독한 분노를 몰랐다. 알아도 모르는 바와 다름없었다.”

소설가 김남일은 일본과 중국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뤼쉰의 작품을 탐독하다가 이 시기 한국의 작가들은 어떻게 살고 무엇을 기록했을까 궁금해졌다. 이어 그가 읽어나가기 시작한 염상섭 이광수 변영로 김동인 심훈 김명순 최서해 정지용 이효석 이북명 현진건 박태원 나혜석 백석 이태준 신채호 김남천 김유정 이상 이육사 채만식 등 이름만 알고 구체적으로 정독해보지 않은 한국 작가들을 제대로 접하기 시작하면서 통탄했다.

“읽어도 겨우 두서너 작품이었다. 대개 다 몰랐고 대개 다 못 읽었다. … 동료 작가들도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필립 로스와 커트 보니것과 제발트와 다자이 오사무와 마루야마 겐지는 얘기했지만, 이광수와 김동인을 놓고 토론을 벌이진 않았다. … 아무튼 이러고도 나는 뻔뻔하게 한국의 작가였다!”

김남일은 “이들 앞에 한국 문학의 근대가 ‘날것’ 그대로 놓여 있었다”며 “태어나보니 식민지였는데 그들은 말도 없이 문법도 없이, 스승도 없이 교과서도 없이, 총도 없이 칼도 없이 어찌 그 곤경을 돌파해나갔는지 그들의 곤혹과 고통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다. ‘작품’보다는 ‘작가’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극적인 삶을 풀어낸 김남일은 “염치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수치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며, 문학은 ‘염치’와 ‘수치’를 동시에 일깨워주는 언어예술”이라면서 “염치와 수치의 얼굴들이 근대를 어떤 풍경으로 그려내고 있는지 가감 없이 들여다보는 일도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국근대대중문학총서 틈’ 1호 ‘방전탑의 비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수장 중인 3만여 권의 근대문학 책들을 정리하면서 존재가 가리워졌던 ‘대중문학’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른바 ‘본격문학’을 기준으로 한국 근대문학을 정리해온 관행 때문에 길거리에서 파는 ‘딱지본’과 본격문학 사이에 위치한 의미 있는 ‘대중문학’은 소외돼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이처럼 ‘틈’에 끼여 있는 한국근대문학을 시리즈로 기획해 첫 책으로 내놓은 작품이 이봉권이라는 무명의 인물이 저자인 ‘방전탑의 비밀’이다.

일제 강점기 막바지에 만주국을 무대로 B-29 폭격기를 격추할 신무기를 조선인이 만들어내고, 이를 일제에 헌납하지 않고 백두산에서 민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과학탐정소설’이다. 전문가가 아니면 구사할 수 없는 지식과 촘촘한 묘사로 볼 때 단순한 대중소설이 아니라는 평가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득세하던 1949년 출간돼 전쟁 시기에도 각광을 받아 1952년에는 3쇄까지 인쇄했다. 1961년 개정판 판권에는 대중문학 작가 방인근(1899~1975)이라는 이름이 기재돼, 그가 실질적인 저자라는 추측도 있다.

이현식 한국근대문학관 관장은 “한국문학 중 일본인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작품은 거의 없으며 문장이나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면서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일종의 팩션”이라고 소개했다. 이 총서의 기획위원들(김동식 김미현 박진영 이현식 천정환 함태영)은 “본격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류의 고소설이나 장터의 딱지본 소설도 아닌 소설들이 또 하나의 부류를 이루고 있음을 문학관의 실물자료를 보고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면서 “이런 자료들 가운데 그래도 오늘날 독자들에게 소개할 만한 것을 가려 재출간함으로써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근대문학사의 빈 공간을 채워넣으려 한다”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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