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한국인의 겸양 문화

관련이슈 다문화 칼럼 함께하는 세상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9-10-02 21:38:08 수정 : 2019-10-02 21:38:08

인쇄 메일 url 공유 - +

전통사회에서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중요한 과업으로 여겼다. 그것은 유교의 실천 덕목이었다. 그렇지만 ‘접빈객’(接賓客)의 내용과 방식은 집안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서민 가정에서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 접대를 위해서 장기 보존이 가능한 식품을 준비해 두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시기에는 ‘접빈객’이 힘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적으로 중요했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1970년대 후반 이후 ‘접빈객’ 과업은 점점 약해졌고, 그 내용과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

오늘날 한국인이 타인을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는 형태로는 이사·신혼·입사 등으로 인한 입주(入住) 후 ‘집들이’가 있다. 집들이 때, 집주인은 손님에게 “이렇게 좁고 누추한 곳을 찾아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손님은 “번거로우실 텐데 저까지 초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한다. 집주인은 호화로운 음식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많이 제공하면서도, 말로는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고, 손님은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가득합니다”라고 답인사를 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요즘 한국인은 돌잔치·결혼식·팔순잔치·장례식 등 대부분의 가정 행사를 집 밖 장소에 타인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치른다. 으리으리한 곳에 손님을 모신 경우에도, 초청자는 “누추한 곳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손님은 “이렇게 좋은 곳에 저를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답례를 한다. 음식이 나오면, 초청자는 “음식이 변변치 않지만, 저의 성의를 생각하셔서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고, 손님은 “진수성찬입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라고 답인사를 한다. 뷔페식당에 손님을 초청하고도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게 관행이다.

음식을 성의껏 많이 장만해 ‘접빈객’을 하던 문화가 현대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몇몇 젊은이는 친구를 초대하고 “차린 게 많지만, 몸매 생각하셔서 적게 드세요”라고 인사한다. 반어적 표현이지만, 그 역시 전통문화를 깔고 있다.

한국인은 정성 들여 마련한 선물을 건넬 때도, 주는 사람은 “변변찮은 물건입니다” 또는 “약소합니다만, 저의 성의를 담았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네고, 받는 사람은 “귀한 선물,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라고 답례를 한다.

손님 접대, 선물 증정 등 의례에서, 한국인이 건네는 말에는 겸양 또는 겸손이 전제된다. 그러한 어법의 근저에는 자기 자랑·칭찬은 삼가고 자신을 최대한으로 낮추어 말하는 ‘겸양 문화’가 있다. 유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 사회에서는 찾기 힘든, 한국 고유의 문화다. 즉, 한국인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최고 덕목으로 여긴다.

만약, 한국문화의 맥락을 살리지 않은 채, 이러한 표현을 외국어로 직역하면 외국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말과 실제가 다른 이율 배반’ 또는 ‘자기 과시를 위한 거짓말’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에 대해, 한국인은 ‘말과 실제의 불일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타인을 속이거나 자기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말하며 ‘겸양 문화’를 옹호할 것이다. 낯선 문화를 섣불리 판단·평가하지 말고, 그 맥락을 꼼꼼히 살펴 이해하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절감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조이 '사랑스러운 볼콕'
  • 조이 '사랑스러운 볼콕'
  •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미연 '깜찍한 볼하트'
  •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