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코리아’ 집착보다 국가 활로 개척
‘평화적 두 국가’는 평화·공존과 상통
실용노선 경험 살려 ‘脫분단’ 추진을
“통일이 단시일 내 성취되기 어렵다고 보여진다. … 조국 통일이라는 민족 지상의 염원과 목표를 국제 정세 현실 속에서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다. … 북한과 함께 국제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 호혜평등의 원칙하에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할 것이다.”
1973년 6월 23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Doctrine)을 폐기하는 6·23 평화통일 외교 정책을 선언했다. 1950년대 서독 외무장관 발터 할슈타인이 제시한 할슈타인 원칙은 동독 수교국과는 단교한다는 초강경 노선이다. ‘하나의 독일’, ‘원 저머니(One Germany)’ 정책이다. 동방정책을 추진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정권 출범 후 1972년 두 국가 체제 즉, ‘투 저머니(Two Germany)’를 공인한 동서독기본조약이 체결되며 공식 폐기됐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임을 주장해온 우리도 과거 ‘원 코리아(One Korea)’ 노선을 견지했다. 단독 유엔 가입 시도, 북한과 수교한 아프리카 모리타니(1964), 브라자빌 콩고(콩고공화국, 1965)와의 단교가 그 예다.
6·23 선언은 대북·외교 노선의 일대 전환이다. “과도기적, 잠정적 조치로서 결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고 했으나 사실상 ‘투 코리아(Two Korea)’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영구분단 책략이라고 발끈했다. 6·23 선언 배경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 방중이 상징하는 냉전 완화, 비동맹 아프리카 신생국의 약진에 따른 외교 환경의 악화 등 복잡한 정세가 작용했다. 악조건 속에서 활로를 개척하려는 박 전 대통령 나름의 실용 노선·현실 노선이 6·23 선언이었다. 남북 동시 수교국의 존재, 사회주의권과의 국교 수립,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은 ‘투 코리아’의 결실이자 국제법적·현실적 증거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에 대해 영구분단론이니 반통일론이니 하는 매도가 어폐인 이유다. 정 장관 발언은 ‘투 코리아’라는 현실과 ‘원 코리아’라는 지향을 구분해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지향’보다는 당장의 ‘현실’에 집중해 교류·협력을 재개하면서 평화·공존의 길을 열어보자는 뜻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말마따나 ‘단시일 내 성취가 어려운 목표’를 어떻게 구현할지 실용적 고민이 녹아 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원 코리아’를 강제하려면 유엔에서의 북한 축출과 남북 동시 수교국과의 단교가 논리적 귀결이다. 그럴 이유나 힘이 있는가. 정 장관 스스로 ‘원 코리아’ 목표를 부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헌법 제3조(영토 조항), 제4조(통일 조항) 위반 시비도 한계가 있다. 그동안 남북의 통일론이 되레 불신을 증폭해 대립을 격화시켰다는 반성이 우리 내부에 있다. 통일을 앞세우기보단 분단 모순을 완화해 평화·공존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탈(脫)분단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물론 대중은 ‘두 국가’에 집착해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형국이다. 자업자득인 측면이 없지 않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유사한 용어로 오해를 유발한 부분이 있다. 평화·공존이나 탈분단처럼 보통 사람이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용어를 썼다면 어땠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와는 별개로 통일부, 탈북민의 명칭 변경 추진에서 야기된 불필요한 잡음, 북한 비핵화나 인권 문제를 경시하는 듯한 정부 내 기류, 통일에 대한 국민의 관심 저하 우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두에 선 만큼 신중한 행보가 필요하다.
극심한 보혁, 여야, 진영 대립에서 여진은 계속된다. 6·23 선언 때 더불어민주당의 뿌리인 신민당에서는 서슬 퍼런 유신 체제임에도 영구분단론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종필 당시 총리는 우리 후손의 평화통일을 위한 잠정적 조치로서 평화를 정착시켜 통일을 구현하는 적극적 외교 공세라는 논리로 설득해 초당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우리 사회가 과거 실용노선 경험을 되살려 현재 직면한 현실을 직시한 바탕 위에서 평화·공존의 길을 가는 구체적 방안을 실천하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학폭 대입 탈락](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04/128/20251104518667.jpg
)
![[데스크의 눈] 트럼프와 신라금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08/12/128/20250812517754.jpg
)
![[오늘의 시선] 巨與 독주 멈춰 세운 대통령](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04/128/20251104518655.jpg
)
![[김상미의감성엽서] 시인이 개구리가 무섭다니](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04/128/20251104518643.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