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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선택 이면엔 괴롭힘·구타... 군대 내 ‘억울한 죽음’ 밝혀냈다

입력 : 2019-09-25 19:52:53 수정 : 2019-09-25 22: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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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사망사고진상규명위, 조사결과 / 사망 후 은폐된 가혹행위 등 확인 / 13건 진상 규명… 재심사하기로

# 1985년 7월 청와대 외곽 대공 방어를 담당하는 부대에 근무하던 김모 일병은 자신의 소총으로 자해 사망했다. 당시 군 수사 당국은 김 일병이 계속되는 부대 훈련과 족구 시합을 하다 무릎을 다친 뒤 내무반에 대기하는 과정에서 죄책감에 의한 군 복무 염증으로 자살했다고 결론지었다.

 

사실은 달랐다. 당시 군의관은 김 일병의 정강이 상처가 폭행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격리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지만 무시됐다. 바로 위 기수가 아래 기수에 얼차려를 주는 ‘차수기합’도 여러 차례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일병은 구타, 가혹행위 사실을 수양록(일기장)에 기록해 뒀지만, 군 헌병대는 이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 같은 해 6월 김모 병장은 GP(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에서 수류탄 1발을 터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역을 불과 8개월 앞둔 때였다. 군 수사 결과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장기간 GP 근무에서 기인한 군 복무 염증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엉터리 수사였다. 1983년 10월 보병대대에 배치된 김 병장(당시 이병)은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김모 선임하사로부터 원산폭격 등 가혹행위와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 김 병장은 군단 군견병에 지원해 김 선임하사의 폭행에서 잠시 벗어났지만, 1985년 5월경 김 선임하사가 근무하던 GP에 파견 전입되면서 다시 폭행을 당해야 했다. 사건 발생 2∼3일 전 김 선임하사는 김 병장의 뺨을 때렸고, 사건 발생 몇 시간 전에도 후임병들이 보는 내무반에서 욕을 하며 폭행했다. 김 병장 사망에도 폭행은 은폐됐고,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사례는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25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가진 ‘조사활동 보고회’에서 공개됐다. 군에서의 석연찮은 죽음 뒤에 폭행과 은폐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사례다. 위원회는 1년간 703건의 군 사망사건을 접수, 이 중 84건의 조사를 종결하고 13건을 ‘진상규명’으로 결정했다. 이들이 순직한 것으로 보고, 관계기관에 재심사를 요청한다는 의미다.

 

조사 결과 병으로 인한 사망이 단순 사망으로 잘못 기재돼 수십년간 순직 심사대상에서 누락된 경우, 수류탄 폭발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한 사례도 공개됐다. 잘못된 보직 배치로 인해 심적 부담감이 커진 사례, 6·25전쟁 중 전투로 중상을 입고 사망했음에도 치료 중 강제전역 처분으로 전상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위원회에 따르면, 최근까지 70년간 3만9000여명이 군에서 비순직 사망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해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서 관련자에 대해 재심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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