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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탄광 속 카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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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9-03 23:38:05 수정 : 2019-09-03 23: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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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잠수함에는 반드시 토끼를 태우고 다녔다. 토끼는 사람보다 공기 중 산소 농도 변화에 훨씬 민감하기 때문이다. 밀폐된 공간인 잠수함 안의 공기 질이 나빠지면 토끼가 먼저 반응한다. 승무원들은 토끼가 호흡 곤란으로 쓰러지는 걸 보고 잠수함을 물 위로 떠오르게 해 환기를 했다. 토끼가 잠수함 내 이상을 알려주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19세기 유럽의 광부들은 탄광 안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데려갔다고 한다.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는 메탄가스나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가스에 유독 민감하다. 광부들은 카나리아가 울지 않거나 움직임이 둔해지는 등의 이상징후를 보이면 즉각 갱도에서 대피했다. 탄광 속 카나리아도 잠수함 속 토끼처럼 인간이 알아채지 못하는 위험 징후를 감지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미국 백악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선임보좌관이 미국의소리(VOA)방송에 출연해 “한·미동맹이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한·미동맹의 마찰을 탄광 속 위험을 미리 알리는 카나리아처럼 경고 신호로 보고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위험한 수준에 도달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쪽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한·미 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허투루 들을 말이 아닌 것 같다.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잇따라 유감과 실망을 표시하자 외교부가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따지고, 다시 미 정부 당국자가 결정 번복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청와대가 ‘주한미군 기지 조기 반환’ 카드를 불쑥 꺼내든 것도 마찬가지다.

위험 신호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진짜 위험이 닥치기 전에 예방하거나 대비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동맹 간에 이견이나 불협화음이 생기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풀면 된다. 문제는 카나리아가 이상 징후를 보이는데도 부인하거나 외면하는 경우다. 지금 우리 정부가 그런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면 기우일까.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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