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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굳게 닫힌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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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28 21:46:16 수정 : 2019-06-28 21: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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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걸리는 일 있으면 /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 그리워하고 사랑한다고 / 용기를 내어 고백해야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여는 말이 있다. 이제 저 사람에게 더 이상 희망을 가지는 것은 어렵다 싶을 때,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 싶을 때쯤. 자포자기에 가까운 상황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말이 그렇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서 ‘이보다 더 이기적인 사람은 없다’는 듯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던 주인공 멜빈 유달이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렵사리 던지는 고백의 말처럼. “당신 때문에 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을 때 들리는 아름다운 고백의 말은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어 젖힌다.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는 언어의 사례를 모으던 나는 ‘치유적 언어’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음을 깨닫게 됐다. 첫 번째 치유적 언어는 ‘발견의 언어’다. ‘아하’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선물하는 언어이다. 나에게는 심리학의 기본적인 개념을 공부하는 시간이 그런 발견의 기쁨을 주었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차이를 아는 순간,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관계를 아는 순간, 나는 기뻤고, 내 슬픔의 원인을 알 것만 같았고,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는 자극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없어지는 고통이지만, 트라우마는 자극이 사라져도 여전히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며 인간의 성격마저 바꿀 수 있다. 사회적 연기를 담당하는 가면의 인격, ‘페르소나’가 복잡하게 발달할수록, 우리의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모두 다 포함하는 부분인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이렇듯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좀 더 명료한 언어로 이해하고 그 원인을 발견하는 순간, 치유의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정여울 작가

두 번째 치유적 언어는 ‘개성화의 언어’다. 창조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 예컨대 시인이나 소설가의 아름다운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는 ‘참된 나’를 찾아가는 기쁨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고통 앞에서 포기하고, 트라우마 앞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슬픔을 삶의 일부로 조용히 끌어안고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나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배운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저마다 엄청난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장면처럼. 불행과 고통, 트라우마와 슬픔에는 인간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행복했다면, 만인이 완전히 평등하게 태어났다면, 우리 삶에는 어떤 개성도 창조성도 깃들지 못했을 것이다. 저마다의 불행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 마음의 지문이 생기고, 우리 영혼의 개성이 창조된다. 바로 그런 견딤과 이겨냄의 과정 속에서 저마다 ‘참된 나’를 찾아가는 문학작품 속의 주인공이 나를 철들게 했고, 내 슬픔이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세 번째 치유의 언어, 그것은 ‘사과와 감사의 언어’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감사하다고, 용기를 내어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미안하다’는 말은 아주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 감사하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로 늦는 법이 없다. 아무리 늦게 도착할지라도, 우리 마음이 아직 치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말. 그것이 미안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므로. 우리가 더 나은 삶을 향해 걷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미안하다는 말은 아무리 늦게 도착해도 결코 늦지 않다. 우리가 자기 안의 상처를 반드시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모든 순간 우리 마음속에 있다. 상처를 다독이고, 내가 당신을 아주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아 속삭여보자.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오늘부터 더 잘할게. 내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될게. 눈치 없고 배려심이 부족한 나 때문에 상처받았을 모든 사람에게 사과하고 싶다. 여전히 미안하고, 그럼에도 사랑한다고. 그때보다 더 깊은 미안함과 쑥스러움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고. 여전히 미안하고, 매일매일 그립고, 그때보다 더 깊이 사랑한다고.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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