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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외교관의 꽃’ 대사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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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0 23:59:54 수정 : 2019-05-20 23: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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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교 174주년이 된 미국 해군사관학교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졸업생은, 뜻밖에도 지미 카터(95)다. 1947년 해군 소위로 임관한 카터는 1953년 대위를 끝으로 제대해 군인으로서 존재감은 미미하다. 하지만 이후 정계에 투신해 대통령(1977∼1981)을 지내고 노벨평화상(2002)까지 받았다.

미 해사 홈페이지엔 ‘모교를 빛낸 동문(Notable Graduates)’ 코너가 있다. 해사 출신 유일의 ‘대통령’ 카터를 필두로 ‘연방정부 장관’ ‘대사(Ambassadors)’ ‘연방의회 의원’ ‘주지사’ 등 순서로 유력 졸업생을 소개해놓았다.

김태훈 특별기획취재팀장

대통령, 장관이 맨 앞을 차지한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대사를 의원이나 주지사보다 상석에 배치한 점은 좀 의외다. 해사 동문 가운데 외국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인물은 총 21명이다. 1978년도 졸업생으로 예비역 4성 제독인 해리 해리스 현 주한 미국 대사도 당연히 명단에 있다.

미국 사회가 대사직에 얼마나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흔히 ‘외교관의 꽃’으로 불리는 대사는 주재국 정부와의 외교협상이 핵심 임무다. 그 나라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도 빼놓을 수 없다.

한마디로 해외에서 조국의 ‘국격’과 ‘국익’을 책임지는 자리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아무리 작은 나라로 보내질 대사 후보자라도 꼭 상원 인사청문회와 인준안 표결을 거쳐야 한다. 외교관 출신이든 다른 분야에서 온 인사든 대사직을 맡으려면 엄격한 검증 절차 통과가 필수다.

흔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 외교관은 어느 나라에 가든 ‘칙사’ 대접만 받을 거라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미국은 ‘친구’ 못지않게 ‘적’도 많은 국가다. 험지에 근무하는 미국 대사라면 임무 수행을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2012년 9월 크리스 스티븐스 당시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로 순국했다. 2015년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대사는 어느 반미단체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은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2년이 확정됐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대사가 의원, 주지사 이상의 영예로운 공직으로 통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한국은 외교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중요하다. 지금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한·미 동맹 및 한·일 관계 정상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해소 등 난제가 수북이 쌓여 있다.

그런데 미·일·중 3국에 나가 있는 우리 대사들이 이런 과제를 풀 적임자인지 의문이다. 주미 대사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뛴 경제학자 출신이다. 북핵 등 안보 문제를 다뤄본 경험이 없다. 주일 대사는 정통 외교관이긴 하나 ‘일본통’으로 불리기엔 부족하다. 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옮긴 주중 대사는 아예 외교 문외한이다.

우리 생존이 달린 외교를 대하는 문재인정부의 태도가 너무 안이한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선 승리에 기여한 ‘개국공신’이나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측근들한테 선심 쓰듯 나눠주는 전리품 정도로 치부하기엔 대사의 무게가 간단치 않다.

 

김태훈 특별기획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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