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이 장악한 5월, 가정의 달 극장가. ‘어벤져스 말고 볼 영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1일 개봉한 육상효 감독의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는 이런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영화다. 서로 머리와 몸이 돼 주며 공생하는 또 하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장애인들의 인권, 자립문제도 생각해 보게 한다.
지체장애인 세하를 열연한 배우 신하균(45·사진)은 “뜨거운 영화는 아니고 따뜻한 영화”라며 “화려하지 않지만 가슴에 스며들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실 수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장애인·비장애인 더불어 사는 세상 되길”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신파로 흐르지 않죠. 특별한 능력이 있는 모습으로 그리지 않는 것도 좋았어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하균은 ‘나의 특별한 형제’를 선택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 영화는 지체장애인 최승규씨와 지적장애인 박종렬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신하균은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 청각장애인을 연기한 적이 있다. 이번 역할도 쉽지 않았다. 몸이 아닌 얼굴로만 표현해야 했기 때문. 그렇다고 표정에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는 “표정은 감정에 따라 나오는 것”이라며 “세하의 성장과정을 보면 성격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말을 굉장히 잘할 것 같았다”고 캐릭터를 분석한 과정을 설명했다.

세하는 화려한 언변과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 그는 박 신부(권해효)가 떠난 장애인 복지시설 ‘책임의 집’을 이끈다. 친동생과 같은 지적장애인 동구(이광수)가 있기에 가능한 일. 두 사람은 자립에 나서려 하지만 이내 가시밭길에 부딪힌다.
“내가 동구를 이용했다면 동구도 나를 이용한 거고, 내가 동구를 도왔다면 동구도 나를 도운 겁니다.”
세하의 대사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신하균은 동구 역할을 맡은 이광수를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며 “진정성을 갖고 감정을 표현하려는 모습이 너무 좋았고 호흡도 잘 맞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애인 분들은 (비장애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힘들고 불편하다는 걸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장애를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를 원하는데 그런 편견 때문에 어려운 게 안타까워요.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우리가 잊고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가고 싶습니다.”
영화 못지않게 그에게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장애인 영화 관람 어려워…개선 노력은 지속
영화 속에서 세하와 동구, 이들의 둘도 없는 친구 미현(이솜)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추억을 쌓아 간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립은커녕 영화관람도 어렵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장애인 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들에게 영화관 문턱은 아직도 너무 높다”면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영화 상영관 경영자가 자막, 화면해설 등을 제공하는 한국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상영하게 하고 보청기와 점자 안내 책자, 휠체어 등을 갖추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다만 영화계의 자체적인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해 4월 한국농아인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멀티플렉스 3사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 화면해설 서비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서비스는 영화에 대사와 효과음 등을 자막으로 표기하고 화면해설과 상황을 설명하는 음성을 넣어 시·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을 돕는다. 전국의 74개 영화관에서 자막과 화면해설이 있는 한국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서비스를 ‘가치봄’이란 브랜드로 새롭게 선보였다. 서비스 이름이 없어 그간 여러 명칭이 혼용돼 왔다.
영진위 관계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보는 폐쇄형 시스템의 도입과 정착을 위해 한국형 시스템을 직접 설계해 특허 출원을 추진하고 있다”며 “특허 출원에 한두 달 정도 소요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폐쇄형 시스템은 필요한 사람만 별도의 보조기기를 통해 자막이나 화면해설을 수신하는 방식이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