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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먹되, 철 들지 말자…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못다한 말들 [TV에 밑줄 긋는 여자] (39)

, TV에 밑줄 긋는 여자

입력 : 2019-04-07 14:27:13 수정 : 2023-12-10 22: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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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면 속 시원한 드라마도 있고, 종영 후 진한 여운이 남아 몇주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작품도 있다. 지난 19일 끝난 드라마 JTBC ‘눈이 부시게’는 나에게 후자에 속하는 드라마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이는 들어봤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25살에서 청춘에서 70세의 할머니가 됐다니 다소 황당하고 어이없는 설정이지만 몸도 뒤바뀌고, 영혼까지 바뀌는 설정이 난무하는 드라마도 있는데 이쯤이야 귀엽게,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게다가 몇 년 전 실제 노인 분장을 하고, 하루를 살아보는 형식의 프로그램(MBC ‘미래일기’ 2016년 9월 방영)이 있었기에 ‘갑자기 확 늙어버렸다.’라는 설정이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왜 가끔 거울을 보며 나이가 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기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드라마는 종영을 딱 2편 남겨두고, 주인공 김혜자(김혜자 분·사진)가 ‘어느 날, 갑자기 늙어버린’ 타입 슬립 설정이 아닌 70대의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충격적인 반전을 드러났다.

 

그 때문이었을까, 종영 후 마지막 설정을 알고 난 상태로 이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게다가 12부작이라는 다소 만만한 편수는 나의 ‘드라마 정주행’ 욕구를 또다시 불태웠다. 

 

“마음은 그대로 몸만 늙은 거야, 이것들아” 

 

#‘눈이 부시게’ 중 김혜자의 대사 

 

노희경 작가의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년 5~7월 방영)는 평균 연령 75세의 대한민국 ‘명품’ 배우들이 총출동해 노인의 삶과 현실적인 문제를 솔직하게 ‘날것’ 그대로 표현했다. 겉으로는 큰소리 뻥뻥 치고, 헛기침을 연신 하며 ‘꼰대’처럼 행동하지만 노인들 역시 작은 일에 상처받고, 여리디여린 속내를 가진 그저 나이만 먹은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그려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견고할 것으로만 여겨졌던 어르신의 여린 속내와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조금은 처연했고, 못내 쓸쓸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었던 반면 실제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시청을 꺼렸다는 후문까지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어느날 갑자기 ‘노인’이 된 25살의 혜자를 통해 젊은이 입장에서 살아보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때로는 통통 튀는 매력으로, 할 말 다하는, 불의 앞에서 ‘오지라퍼’(?)의 소임을 다하는, 철이 덜 든 솔직한 어르신을 그려냈다. 몸은 비록 70대지만 마음만은, 또 생각만은 늙지 않았음을 25살(한지민 분·사진)에서 70대의 할머니가 된 김혜자를 통해 담아낸 것이다. 

 

드라마 정주행을 마치고, 이를 과연 어떻게 정리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필사한 노트가 엉망이 될 만큼 명대사가 수도 없이 많았고, 주책 맞게 철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인생의 후반기를 살고 있는 자신을 안쓰러워하고, 젊지만 자신의 삶을 애틋하게 여기지 못하고 있었던 이준하(남주혁 분·사진)에게 전했던 혜자의 대사를 되새기고 싶다.  

 

“난 말이야, 내가 애틋해. 남들은 다 늙은 몸뚱어리, 더 기대할 것도 후회도 의미 없는 인생이 뭐가 안쓰럽냐 하겠지만 난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 너도, 네가 니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어.”

 

#‘눈이 부시게’ 중 김혜자의 대사

 

늙음은 죄가 아니다. 누군가 삶의 속도는 나이(숫자)에 비례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고 일어나니 노인이 됐다는 혜자처럼 우리 어르신도 어쩌면 지난 50년의 세월이 한순간, 하룻밤의 그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늙어버린 혜자처럼 나이는 먹었으되 철은 들지 말자. 철이 들었다는 이유로 세상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지도 말고, ‘꼰대짓’도 하지 말자. 그저 20대의 그때처럼 행동할 순 없지만 마음만은 그때처럼 살아보자. 

 

나의 이런 생각을 한 단체 카카오톡방에 올렸더니 한 분이 이런 말을 남겼다. 

 

“철이 들었다고 스스로 자만하며 다른 사람의 소중한 것들을 내 작은 시선과 입으로 평가하며 그들의 경험치를 빼앗은 일을 할까봐 겁이 나요. ‘내가 해봤는데...’라며 마구 지껄이게 될까봐 내 자신이 무섭습니다. 그리 생각하면 정말 철들지 않고 그냥 ‘나이’만 먹었으면 좋겠어요. 나보다 30살 어린 딸에게도 배움을 얻고 있으니 조금은 가능하겠지만요.“ 

 

진짜 철들지 말자. 그저 나이만 먹자.

 

이윤영 작가, 콘텐츠 디렉터 blog.naver.com/rosa0509, bruch.co.kr/@rosa0509

사진=JTBC ’눈이 부시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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