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한 남편이 전 부인을 지속적인 스토킹 끝에 숨지게 하면서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가운데 과거 국회에 제출된 스토킹 관련 법안들은 하나도 통과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 5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가칭)을 입법예고하며 상반기 국회 발의를 예고했지만 아직 내부 논의조차 끝내지 못했다.
12일 과거 국회에 발의된 스토킹 관련 법안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해보니 15대 국회인 1999년 김병태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 등 13명 의원이 발의한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을 시작으로 해서 총 12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안은 당사자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미행한 사람을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15대 국회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후 △16대 국회 1건 △17대 국회 1건 △18대 국회 1건 △19대 국회 3건 △20대 국회 5건이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이외에도 19대 국회에서 안효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스토킹 행위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2012년 민주당 의원 시절 스토킹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임기만료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20대 국회에서 스토킹 관련 법안을 발의한 정치권 관계자는 “별도 법 제정 필요성과 스토킹 정의를 둘러싸고 이견이 심했다”고 전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2014년 297건에서 지난해 436건으로 3년 새 139건(46.8%) 늘었다.
결국 1999년 처음 스토킹 관련 법안이 발의된 이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경범죄처벌법만으로 스토킹 범죄를 처벌하고 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41항에 따르면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따라다니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형으로 처벌한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거의 구류형보다 벌금에 그쳐 가해자에 대한 분노만 키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5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했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예고안은 스토킹 범죄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당시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도 내부 논의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여러 부처, 단체 등에서 의견을 줘 법안 발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스토킹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전문가 의견은 갈린다. “스토킹과 호감에 의해 따라다니는 행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이냐”는 주장과 “피해자들이 속출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법학과)는 “상대방을 처벌하려면 행위에 대한 정확한 구속요건이 필요하다”며 “상대방 의사에 반해 따라다녔다는 것을 두고 명확성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현수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스토킹 범죄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는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사회적 규제를 통해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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