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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두 바퀴에 설렘 싣고… 전국을 스케치하는 ‘그림 여행가’

입력 : 2018-07-25 10:00:00 수정 : 2018-07-24 23: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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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째 자전거 여행하는 ‘전직 국어 교사’ 배상섭씨
박진감 넘치는 인생 2막 배상섭씨가 아산시 용곡공원에서 전기자전거로 활짝 핀 꽃밭 사이를 누비며 풍경을 만끽하고 있다.
오늘은 어디로 떠나볼까? 장소 검색을 마친 배상섭(73)씨가 고속철도역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힘껏 구르기 시작한다. 이른 새벽 시작되는 그의 자전거 여행은 어두컴컴한 저녁이 돼 집으로 향하며 끝이 난다. 이렇게 여행을 시작한 게 벌써 13년째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배씨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집을 나선다. 배낭에는 A4용지보다 작은 크기의 도화지와 사인펜, 간식과 자신이 쓴 책 두세 권이 담겨 있다. 책은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말벗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다. 한때는 승용차를 타고 여행을 다녔지만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그냥 드라이브만 하는 기분이라 자전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먼저 목적지에 닿으면 관광안내소를 찾아 지도와 자료부터 확보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다. 그리고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걸터앉아 그림을 그린다. 시간이 아까워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집에 와 그림으로 옮겨 본 적이 있지만 현장감이 떨어져 그만두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2774점 그렸다오” 배씨의 집 작업실에서 그동안 작업한 스케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고속철 타고 다시 집으로… 여행을 마친 배씨가 천안아산역에서 접이식 자전거를 들고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고속철도를 기다리고 있다.

배씨는 어릴 적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약화사전’이란 소묘 책자를 접하면서 그림을 그리게 됐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해서인지 미술 성적은 좋지 않았어요”라며 웃는다. 집에 돌아와 하루에 하나씩 그림과 글을 블로그에 올린다. “내가 살았던 우리 시대 산천의 모습과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줘서 그런지 내 욕심인지 일 년에 책 한 권씩 나오더라고요, 지금까지 총 11권의 책이 나왔어요”, “최근 펴낸 책의 마지막 그림이 ‘2774. 제주 협재 해안’이오. 그 번호만큼 전국 명소를 찾아다녔지요. 그중에 손에 꼽을 만한 관광지는 몇 번을 다녀와도 또 가고 싶은 순천만 국가정원이오. 중국의 이화원을 떠올리게 하는 재밌는 구조로 되어있지요.”, “내 나이 또래 노인들이 가기에 좋은 곳도 있어요. 서울대공원, 대천해수욕장, 산정호수, 대야산 휴양림, 서산 용현휴양림, 영주 무섬마을, 함양 상림, 법주사와 그 계곡, 인제 자작나무숲….”
쓱쓱쓱∼ 작품에 집중 공원 그늘에 앉아 도화지와 사인펜으로 아파트를 그리고 있다.
어느새 해가 졌네 여행을 마친 배상섭씨가 늦은 저녁 헤드랜턴을 켜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여행 후엔 반드시 블로그에… 하루 한 번 여행을 다녀오면 매일같이 올리는 스케치 1365 블로그의 메인 화면.

“우리나라 어디까지 가봤소? 다들 요즘 해외여행만 가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얼마나 돌아봤소? 난 지금 수년 동안 전기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아직 반도 못 본 거 같소. 난 아마 죽을 때까지 다 돌아보지 못할 거 같소”라며 말을 이어간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참 보람되게 살았지만 인생 2막은 퇴직 후부터란 말이 있소. 난 지금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글도 적고 있소. 교사 시절보다 더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인생을 살고 있다오.”

글·사진=이재문 기자 m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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