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캇 서울에서 28일까지 열리는 ‘수행하는 문자, 문자의 수행자’전은 고대 문자와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접점을 모색하는 자리다. 과거에는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곧 권위와 특권의 상징이었다. 각 문자에 담긴 의미는 주술과 같은 힘을 가졌다고 믿어졌기에 문자와 책은 모두 신성시되었다. 고대 문자가 실용적인 수단이면서 예술작품이었고, 더불어 제의적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상형 문자인 고대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hieroglyph)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옛 이집트인들은 죽은 이의 관에 미라와 함께 ‘사자의 서’ 같은 장례문서를 안치했다. 사후 세계의 여정을 안내하는 정보서다. 삽화로 표현된 장면들은 미술품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부활과 영생을 위한 주문과 기도 등 제의적 기능도 담았다. 문자가 정보 전달을 위해 정확해야 했고, 예술로서 아름답게 형상화되어야 했으며, 강력한 주술적 힘도 갖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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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서 양피지 두루마리(기원전 18세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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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채색 성경(1583년) |
타이포그래피는 문자의 배열을 통해 예술적으로 구성된 이차원적 표현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일컫는다. 문자가 갖는 실용성을 넘어서 미학적 상징성에 주목하는 타이포그래피는 글자를 쓰는 일상적 행위에 예술적 의미를 더한다. 의미 전달의 수단이라는 실용적 기능을 넘어 문자를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글자의 예술적 성취를 이뤘던 과거의 장인과 현대의 타이포그래피 작가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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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왕조 고위관직자의 명문 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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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우상(기원전 4000년). 신께 헌신한다는 의미로 바쳐진 헌납물이자 양실털을 뽑는 도구로 사용됐다. |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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