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청아하다. 여름이 매미 철이라면 가을은 귀뚜라미의 절기다. 매미가 대낮에 울어 젖힌다면 귀뚜라미는 낮에도 울지만 야밤에 노래 부르기를 더 즐긴다. 귀뚜라미도 수놈이 우는데, 다른 수컷을 쫓아내는 울음소리는 거칠고 시끄럽지만 암컷을 부르는 사랑노래는 아주 나근나근 살갑다. 가을 끝자락에 짝짓기한 암놈은 길고 뾰족한 산란관(産卵管)을 땅바닥이나 식물줄기에 꽂아 산란하고, 알 상태로 월동하며 이듬해 봄에 부화한 유충은 6~12번 탈피해 성충이 된다.
귀뚜라미는 귀뚜라밋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잡식성이라 오이, 당근, 가지 같은 식물성 먹이와 멸치 따위의 동물성 먹이를 좋아한다. 아프리카나 지중해 원산인 ‘쌍별귀뚜라미’(two-spotted cricket)는 앞날개 앞자락에 크고 노란 점이 둘 있다. 쌍별귀뚜라미는 수입 종으로 갈색거저리의 유충(밀웜·mealworm)처럼 식용은 물론 애완동물의 먹잇감으로 많이 키운다. 또 중국인들의 귀뚜라미싸움놀이는 유명하다.
그러면 귀뚜라미는 어떻게 소리를 낼까. 귀뚜라미 소리는 마찰음으로 역시 수놈만 소리를 낸다. 수컷의 오른쪽 앞날개 밑면에는 까칠까칠한 줄처럼 생긴 거친 날개 맥(시맥)이 있고, 왼쪽 앞날개 윗면에는 발톱처럼 생긴 단단한 돌기가 있어서 오른쪽 날개를 왼쪽 날개 위에 올려놓고 쓱쓱 문질러 귀뚤귀뚤하고 소리를 낸다. 한마디로 머리빗 살을 손톱으로 긁을 때 따르륵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원리다.
흔히 ‘아낙네의 다듬이 소리, 아이들 글 읽는 소리, 갓난아이 우는 소리’를 삼희성(三喜聲)이라 한다. 예부터 한 집안이 번창하기 위해선 이 세 가지 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녕 이 세 가지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특히 이 가을에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그립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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