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동·서양 왕실 도서의 형성 과정을 좇다

입력 : 2016-11-10 20:56:40 수정 : 2016-11-10 20:56:40

인쇄 메일 url 공유 - +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제학술회의 세종이 책벌레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버지 태종이 아들의 건강을 염려해 책을 뺏어 숨겨 놓을 정도였다. 세종의 책사랑은 내내 이어져 재위 17년 세종실록에 “문적이 많기가 오늘날처럼 성한 때는 없었다”고 기록할 정도가 되었다. 세종대뿐만 아니라 역대 왕조와 왕실의 책에 대한 관심은 컸다. 책을 모아 보관한 궁궐의 장서각은 규모나 질에서 단연 으뜸이었는데, 조선의 궁궐에는 확인된 것만 22곳이나 있었다. 왕실이 주도한 대규모 장서의 형성은 조선만의 문화는 아니어서 각국에서 거대한 규모의 왕실 아카이브가 형성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10일 개최한 국제학술회의 ‘동서양 기록문화의 과거와 현재’의 ‘동서양의 왕실 아카이브’ 섹션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왕실 도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 논문이 발표됐다.

한중연 옥영정 교수는 논문 ‘조선궁궐의 장서각과 장서관리의 전통’에서 세자의 교육을 담당했던 시강원이 책을 수집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시강원의 장서각은 “오랜 기간 단일 기구로서 존재했고, 궁궐 내 각 장서처에 비해 존치기간이 길어 장서량이 많다”는 점에서 왕실 도서의 형성과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강원 장서각 조선시대 세자 교육을 담당했던 시강원의 장서는 ‘춘방’에 보관됐다. 역대 왕조는 서적 수집에 큰 관심을 가졌고, 궁궐의 곳곳에 장서각을 설치해 거대한 도서관과 같은 역할을 했다. 창덕궁을 그린 ‘동궐도’의 춘방 부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논문에 따르면 시강원은 중앙기관이 소장한 서적을 이관하는 방법으로 장서를 채워 갔다. 인조 3년 시강원은 이괄의 난으로 소장 서적을 잃어버리게 되자 홍문관에서 책을 옮겨왔다. 중앙기관뿐만 아니라 지방의 감영 또한 책을 확보하는 주요한 통로였다. 인조 11년 전라도에서 인쇄한 ‘주자서절요’를 받은 기록이 있고, 인조 26년에는 세자 교육용 교재로 필요한 ‘시경’, ‘서경’을 전주, 안동, 합천에서 간행한 새 책으로 보충한 적이 있다. 스스로 편찬 주체가 되어 장서를 늘려가기도 했다.

옥 교수는 장서 수집의 또 다른 통로로 중국에 파견한 사신을 들었다. 1669년 현종 10년, 시강원은 서적이 본래 적은 데다 “중국판에 이르러서는 더욱 갖춘 바가 없어서 참고하여 살펴볼 적에 항상 너무 간략함을 근심한다”고 불평했다. 그러면서 “사신이 중국으로 갈 때 돈을 충분히 내려 책을 구해올 수 있게 하는 게 어떠냐”고 청했다. 옥 교수는 “필요한 서적이 있을 때마다 해당 관창에서 사신 가는 편으로 부탁하여 구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며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시강원의 장서인이 날인된 현존 규장각 소장의 중국본은 40종 이상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시강원 아패 시강원에서 책을 빌릴 때 사용했던 ‘아패’.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러시아 국가도서관의 올라 바실리바 연구원은 1714년 건립된 러시아 황실 도서관의 도서 수집 과정을 소개했다. 현재 러시아 국립도서관 사본 관리국에는 43만2000여점의 물품이 고대 러시아, 슬라브 및 그리스어 사본, 러시아 고대 기록물, 서유럽 고문서, 동양 자료 등으로 구분되어 전시돼 있다.

기증은 러시아 공공도서관이 서적을 확보하는 주요한 수단 중 하나였다. 러시아에서는 다양한 서적을 소장했던 개인들이 공공도서관에 책을 내놨다. 19세기에는 탄광 엔지니어였던 프롤로프로가 160여점의 고문서를 기증했다. 러시아 정교회의 11대 선교국장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대수도원장 표토르는 중국, 만주, 몽골의 언어로 된 50점의 목판화를 증정하기도 했다.

전리품으로 확보한 서적이 도서관의 책장을 메우기도 했다. 1830년 폴란드의 ‘11월 반란’이 러시아 병력에 의해 진압된 뒤 반란 주동자와 일부 기관들의 소유물이 국가 재산으로 귀속되었는데 이 중에는 많은 책이 있었다. 이 책들은 훗날 폴란드로 돌려주게 된다. 러시아의 도서관이 황금기를 맞은 1851∼1880년 사이 러시아 정부는 구매를 통해 도서를 크게 확충했다. 4개의 고대 시리아 사본들은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시민’으로 알려진 아우구스트 파소로로부터 사들인 것이다. 이 중 하나는 462년 유세비오스가 쓴 교회사의 시리아 역본으로 도서관이 소장한 것 중에 가장 빠른 시기의 작품이다. 1853년에는 역사가 미하일 포고딘 소유의 2000여개 러시아 고문서와 1500개의 증서를 구매하기도 했다. 올라 바실리바 연구원은 “러시아 국립도서관의 사본 관리국은 유럽의 모델을 본받아 보편적이고 다문화적이며 초국가적인 도서 저장소로 만들어져 왔다”며 “러시아 군주들의 강력한 지지와 적극적인 지원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고 소개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유스피어 다온 '완벽한 비율'
  • 유스피어 다온 '완벽한 비율'
  • 조이현 '인형 미모 뽐내'
  • 키키 지유 '매력적인 손하트'
  • 아이브 레이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