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능이 낮은 10대 소녀와 성관계를 가졌다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로 판단된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해당 소녀의 지능지수(IQ)가 또래보다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라 논란이 일고 있다.
A(20)씨는 2014년 4월 7일 밤 경기 성남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이모(당시 17세)양과 술을 마신 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이양과 성관계를 가졌다. A씨는 약 10개월이 지난 2015년 2월 5일 이양을 성남의 한 여관으로 데려가 역시 성관계를 가졌다.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 두번째 성관계에선 술을 마시지 않은 이양이 강력히 저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양은 “A씨가 나를 밀어 침대에 넘어뜨렸고 내 몸을 손으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억지로 옷을 벗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A씨 집에서 벌어진 첫번째 성관계에는 아청법상 준강간, 여관에서 벌어진 두번째 성관계에는 아청법상 강간 혐의를 각각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검찰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해 A씨에게 징역 5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신상정보 5년간 공개·고지를 선고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도 A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상고심의 결론은 달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9일 A씨의 준강간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두번째 강간 혐의는 무죄 취지로 판단하면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 다시 심리토록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씨의 강간 혐의를 인정할 증거는 피해자 이양의 진술뿐”이라고 전제한 뒤 “A씨와 이양이 평소 키스 등 신체적 접촉이 잦았던 점, 사건 당일 술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이양이 먼저 모텔 방에 들어간 점, 성관계 직후 이양이 산부인과에서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은 점, 그 후로도 한동안 두 사람이 카카오톡·페이스북으로 대화를 주고 받은 점 등을 감안할 때 피해자 이양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하급심은 이양의 IQ가 74에 불과해 정상적인 상황대처 능력이나 판단 능력이 없다고 여겼다. 통상 이 정도의 IQ는 지능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정상인과 장애인의 중간에 있는 ‘경계선 지능장애’로 간주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경기지역 한 민간 센터에서 이양을 상대로 실시한 심리평가 결과에 근거해 ‘지적 능력 부족’ 주장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사 결과 이양은 인지기능에 제한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전체지능지수 86으로 ‘평균 하’ 수준, 지각추론 지표점수는 72점으로 ‘경계선’ 수준, 작업기억 지표점수는 90점으로 ‘평균’ 수준, 처리속도 지표는 123점으로 ‘우수’로 각각 나타났다. 대법원은 “이양이 정상적 판단이 어려울 만큼 지적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단정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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