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詩)가 되고/ 이야기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 그대 너무 부드러워요/ 그대 너무 맛이 있어요….”
가수 강산에도 왕년에 일세(一世)를 풍미(風靡)했던 ‘그 노래’를 좋아했나 보다. 이런 노랫말의 강산에의 ‘명태’(2002년)는 오현명 ‘명태’(양명문 작사, 변훈 작곡)의 한 대목을 살짝 들려준 다음 경쾌하게 시작한다. 그리고는 “명태 명태라고/ 흠흐흐흐 쯔쯔쯔/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하고 그 노래 말미를 아예 빌려 끝을 맺는다. 다음은 그 노래 가사 일부다.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프트(이집트)의 왕처럼 미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카∼/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이 몸은 없어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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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덕장(건조장)의 풍경. 명태가 잘 마르면 홍삼처럼 귀한 황태가 되고 나머지는 먹태, 백태, 깡태가 된다. 강원도 고성군 제공 |
명태는 이름이 유달리 많다. 우리가 명태를 좋아했다는 증거다. 또 흔하도록 많이 잡혀 싸게 먹을 수 있었다. 먹는 방법이나 가공법이 다양했고, 너나없이 좋아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팔도의 제사상에도 안 빠졌다. 그 외에도 많다. 김희태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은 손가락 여러 번 꼽으며 연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가히 국민생선이라 할만하다.
사물 즉 일(事)과 물건(物)의 이름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나 유래(由來)를 찾기 힘든 사물도 있지만, 실은 우리가 그 대목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 낱낱의 이름은 역사의 흔적을 지닌다. 인간은 살아봐야 기껏 백년이나, 역사는 길다. 그 이름들은 마을 어귀 수백년 느티나무처럼 오래 인간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천년 넘은 이름도 흔하다.
조선 말 문신 이유원(1814∼1888)은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명천(明川)의 태(太)씨가 잡았다고 땅이름과 어부의 성을 따 명태라고 했다’고 적었다. 허나 이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길 것만은 아니다. 명태 간(肝)을 먹어 눈이 밝아진다고 해서, 또는 간의 기름으로 등불 밝혀 밝을 명(明)자 든 이름을 갖게 됐다는 얘기도 많다. 생것을 명태, 말린 것을 북어라 한다는 기록과 함께 ‘무태어(無泰魚)’나 ‘명태어’라는 이름도 나온다. 영어 이름은 ‘폴럭’(pollack)이다. 많이 잡히는 곳 이름을 넣어 ‘알래스카 폴럭’이라고도 부르는데 요즘 우리가 먹는 명태는 알래스카 바다에서 온 녀석들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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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명태축제의 명태잡이소리 공연(위 사진)과 축제 행사장 모습. 매년 10월 중하순에 열리는 행사다. 강원도 고성군 제공 |
머리 꼬리 살 내장 다 기찬 먹거리다. 살코기와 곤이(鯤鮞·물고기 배 속의 알)는 국이나 찌개, 알과 창자는 명란젓 창난젓이 된다. 생태찌개 생태매운탕 황태구이 황태찜 북엇국 북어무침 등이 모두 명태요리의 한 가족이다. 명태와 함께 넙치 돔 다랑어 상어 고래 대구 등의 간에서 얻은 간유(肝油)는 ‘눈의 보약’이다. 버리는 게 없어 인간에 널리 이롭다. 우리 마음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하는 물고기여서 우리 겨레와 더 기쁜 인연인가보다. 명태 복원 프로젝트의 좋은 성과를 기대한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사족(蛇足)
밝을 명(明)자는 한자의 구성 원리 중 회의(會意)의 사례로 제시되는 글자다. 뜻(意)이 모인(會) 것이 회의다. 빛을 내는 해(日)와 달(月)이 모여 ‘밝다’는 뜻을 만들었다. 지금 글자도 그렇지만, 3000년 전의 갑골문을 봐도 해와 달이 모인 것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옛 문자 중에는 창문(窓門) 모양인 경(冏)자의 옛날 글자(그림)와 달 월(月)자의 합체로 보이는 그림(글자)도 많다. 지금 冏자는 明자처럼 ‘밝다’는 뜻으로 쓰인다.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달의 이미지에서 ‘밝다’는 뜻이 빚어졌을 것으로도 보는 것이다.
日 月 冏 등 명(明)자의 바탕(뜻)을 이룬 글자들은 그림이다. 물체의 모양을 그린 상형(象形)인 것이다. 한자 구성의 다음 개념인 지사(指事)는 일(상태나 동작·事)을 가리키는(손가락 지·指) 그림이다. 태(太)처럼 큰 대(大) 자로 선 사람의 모습에다 점을 찍어 만든 ‘크다’는 뜻의 글자가 지사의 사례다. 이런 그림들이 모이거나 뜻이 확대되어 한자의 체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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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을 명(明)자의 옛 (그림)글자 중 날 日자와 달 月의 합체인 글자(왼쪽)과 밝을 명(明)자의 옛 (그림)글자 중 창문 모양 경(冏)자와 달 月자의 합체인 글자. |
日 月 冏 등 명(明)자의 바탕(뜻)을 이룬 글자들은 그림이다. 물체의 모양을 그린 상형(象形)인 것이다. 한자 구성의 다음 개념인 지사(指事)는 일(상태나 동작·事)을 가리키는(손가락 지·指) 그림이다. 태(太)처럼 큰 대(大) 자로 선 사람의 모습에다 점을 찍어 만든 ‘크다’는 뜻의 글자가 지사의 사례다. 이런 그림들이 모이거나 뜻이 확대되어 한자의 체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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