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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멸종위기 풍란종자 얻으려 절벽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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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15 20:00:52 수정 : 2015-06-25 17: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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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지구 지키는 창조의 길] ③ 전북 무주 식물복원센터를 가다
전북 무주 덕유산에 위치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식물복원센터에서 직원들이 멸종위기종과 희귀종 등을 돌보고 있다.
‘우리는 해마다 1000여 종의 동식물들을 지구에서 쓸어내고 있다.’

더글러스 애덤스가 전 세계를 다니며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을 탐사한 뒤 저서 ‘마지막 기회(Last Chance to See)’를 통해 울린 경고음이다. 지구의 생물들이 우리 곁에서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인간이 벌인 자연훼손과 환경오염이 가장 큰 원인이다.

사라지는 생명체의 수와 속도에 놀란 인간은 뒤늦게 멸종위기종 복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9일 전북 무주 덕유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식물복원센터를 찾았다. 직원들은 오는 6월 멸종위기종 Ⅰ급인 풍란의 자생지 복원을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기후변화로 키 큰 식물의 생장속도가 빨라지면서 햇빛을 가리는 바람에 절멸되고 있는 멸종위기 Ⅱ급 기생꽃.
1980∼1990년대 원예용으로 돌이나 나무에 붙여 파는 것이 유행하면서 풍란은 멸종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한려해상의 섬 절벽에서 풍란 자생지를 발견했던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중간에서 불법 채취에 사용된 로프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에 의한 훼손의 경우 기후변화 등 자연환경의 변화로 멸종에 이른 것보다는 복원사업이 효과가 있다.

멸종위기 Ⅱ급인 기생꽃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 이 키 작은 식물은 기온상승으로 주변의 키 큰 식물이 전보다 빨리 번성해지자 점점 햇빛을 받지 못하면서 사라져갔다. 기생꽃을 살리려면 주변의 키 큰 식물을 제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멸종위기Ⅰ급 풍란을 개량한 원예종. 한때 원예종을 자생지에 복원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식물 복원 과정에서 ‘원종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때 풍란을 복원한다며 개량종을 자생지에 잘못 복원하는 어이없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멸종위기에 처한 만큼 원종을 발견하기조차 어렵고 이를 채취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풍란 원종을 확보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2012년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장이 직접 어느 섬의 절벽에 로프를 타고 내려가 풍란 종자 3개를 얻은 것이 이번에 자생지로 돌려보내게 된 기나긴 복원 여정의 시작이었다.

멸종위기Ⅰ급인 나도풍란의 씨앗. 먼지 같은 것이 씨앗이다. 멸종위기종의 씨앗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신동진 식물복원팀장은 “바다에서 원종을 확보하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배가 들어가는 날짜가 한정돼 있고 증식 발아하는 시기 역시 정해져 있다 보니 이 둘을 맞추기가 어렵다”며 “게다가 로프를 타고 채취한 종자가 막상 열어보니 덜 익었거나, 어렵게 얻은 씨앗이 센터로 오는 동안 열을 받아 삶아지거나 오염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의 한 섬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흰 원 안)이 로프에 매달린 채 멸종위기종인 풍란의 원종을 채취하고 있다.
원종을 확보해도 이를 다시 자생지로 돌려보낼 만큼 수를 늘리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무성번식, 즉 암수 개체 없이 식물의 줄기 등을 잘라 배양을 하면 훨씬 쉽게 개체수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센터에서는 무성번식 방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신 팀장은 “무성번식으로 하면 엄마랑 똑같은 자식들만 나와 유전병이 잘 생기거나 전염병이 발생하면 전멸하게 된다”고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다. 전염병의 발병으로 전 세계 바나나가 절멸 위기에 놓인 것도 우수한 품질의 한 종만을 무성번식으로 늘린 탓이다.

무균배지에서 자라고 있는 멸종위기Ⅰ급 풍란. 2012년에 얻은 씨앗으로 발아시킨 것이다. 여기서 어느 정도 자라면 적응기간을 거친 후 자생지로 옮겨 심어진다.
종자로 증식하는 유성번식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센터 온실 안에 있는 종자를 심은 지 6개월 된 기후변화 취약종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는 겨우 몇 개만 손톱만큼 자랐지만, 가지를 잘라 무성번식한 것은 한 달 반 만에 손가락 길이만큼 자라 있었다.
암석에 붙어있는 멸종위기 1급 풍란. 식물복원센터 증식과정을 거쳐 오는 6월 자생지 복원을 앞두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멸종되고 있는 식물들이라 습도, 온도, 경사, 영양 등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을 찾는 데만도 1년 넘게 걸린다. 멸종 이유를 분석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자생지를 복원하려면 적어도 300∼500개체는 불려서 가야 하는데 1∼2개체로 그만큼 늘리려면 무수한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다. 풍란은 2012년에는 3개의 씨방으로 어렵게 300개체를 얻었지만 이후 증식방법 개발에 성공해 2013년에는 한 개의 씨방으로 3000개체를 증식했다. “그래도 풍란은 복원이 좀 쉬웠나 보죠”라고 묻자 박은희 센터장은 “멸종위기종은 다 성질도 더럽고 까다롭다”며 웃었다.

종자를 심어 번식시키는 유성번식 중인 구상나무의 모습. 종자를 심은 지 6개월 만에 겨우 싹이 2개 나왔다.
식물복원 사업은 복원한 식물이 자생지로 돌아가 도움없이 잘 자라는 것이 핵심이다. 박 센터장은 “자연으로 돌려보냈을 때 고사율이 20% 미만이고 2∼3년 후에 스스로 증식을 해 개체수를 늘리면 성공으로 본다”고 말했다. 센터 직원들이 식물 복원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빨리빨리’ 문화다. 박 센터장은 “초본(풀)의 경우 증식부터 자생지 복원까지 5∼6년, 목본(나무)은 10∼15년 걸린다”면서 “빠른 성과에 대한 주변의 기대가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사라지는 식물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어떤 일이 생길까. 박 센터장은 “식물의 역할은 무궁무진해서 식물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동백나무의 화분 수정을 해주며 사는 동박새는 동백나무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식물복원센터에서 한 직원이 멸종위기종인 솔붓꽃과 희귀종인 설앵초 등을 돌보고 있다.
식물복원센터·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신 팀장도 거들었다. “모아새라는 2m가 넘는 새가 뉴질랜드의 섬에 살고 있었답니다. 사람들이 섬에 들어가 잡아먹는 바람에 절멸됐는데, 나중에 섬을 조사하다 어린나무가 없는 나무들을 발견했습니다. 모아새가 씨를 먹고 배설해야 종자가 발아하는데 모아새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나무가 안 나온 것이죠. 칠면조를 이용해 씨앗을 먹고 배설하게 하면서 그 식물을 복원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신 팀장은 “생태계는 커다란 톱니바퀴”라며 “동물과 식물의 관계가 끊어지면 이 생태계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무주=글·사진 윤지희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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