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8월 취임하자마자 직함이 3개 더 붙었다. 한국기술교육대 재단 이사장,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 회장, 한국직업방송 대표다. 다 일자리와 관련돼 있다. 박 이사장은 미국 코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줄곧 국책연구소에서 일해온 학자 출신이다. 그야말로 일생을 일자리 연구에 전념해왔다. 그런데 박 이사장은 일자리 창출의 답이 현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취임 후 8개월 동안 일주일에 2∼3일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해관계자를 만났다. 최근 6개월 사이 참석했던 약 450건의 회의 가운데 내부회의가 절반, 20%는 울산 본사에서, 나머지는 전국의 다른 지역에서 열렸다고 한다. 인터뷰 당일이었던 9일 오전에도 대통령이 참석한 ‘경남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했고 전날에는 울산과 천안에서 회의를 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서류가방에서 태블릿 PC와 목 베개를 꺼내 보여줬다. 태블릿 PC로 주요 업무와 결제를 대부분 처리하고 목 베개는 KTX와 비행기에서 쓴다고 한다.
―공단의 업무와 역할을 소개해달라.
“공단은 구직 희망자의 취업지원뿐만 아니라 기업 내 근로자 직업능력개발, 능력평가, 외국인고용지원, 해외취업, 숙련기술장려 등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취업에 필요한 능력평가(자격검정) 기관 또는 해외취업 전문기관으로, 기업엔 직업훈련 등 평생직업능력개발지원 전문기관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 코리안드림을 위해 그들을 선발·입국·체류 및 귀국지원을 도와주는 도우미로 인식되고 있다.”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대한 해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청년들이 갈 만한 좋은 일자리가 급격히 줄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당시 신규 채용 인원을 줄였고 기술 개발과 채용방식 변화 등으로 청년들이 갈 만한 좋은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공단은 청년들이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일학습병행제, 청년취업아카데미, 스펙초월 멘토스쿨사업을 통해 국내 취업을 지원하고, 해외취업 연수, 인턴, 알선 사업을 통해 글로벌 노동시장에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해외취업이 과연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근본 대책은 아닐 수 있지만 청년들이 도전정신을 배워오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구조적으로 쉽지 않으니 청년들의 의식을 변화시켜줘야 한다. 해외 취업 경험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에서 도전정신을 발휘하겠다는 의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면 국내에서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해외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공단은 그동안 해외취업을 알선 기업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지원해왔다. 이제는 공단이 직접 해외 현지 기관을 찾아 해외 인턴이나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을 보내려 한다. 특히 독일 상공회의소와 협의 중이다. 독일의 ‘히든챔피언기업’(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에 우리 청년들을 보낼 계획이다. 또 이탈리아에는 디자인 쪽에 학생들을 뽑아서 보낼 것이다. 이 외에도 스위스, 아일랜드 등과도 협의를 하고 있다. 알선 기관 등을 통해 가는 것보다는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것을 추진하려면 현재 규정으로 힘든데 이를 바꿔서라도 시행할 것이다.”
―해외취업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것 같은데.
“작년에 말레이시아를 갔는데 현지 취업한 청년들과 식사를 같이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소통이나 교류 없이 일만 하고 있었다. 다들 너무 힘들어 보여 안타까웠다. 취업한 청년들끼리 모여서 밥 먹고 하다보면 정보도 교류하고 뒤늦게 온 사람들은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계 주요 도시에서 현지 취업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이런 걸 관리해줘야 현지 인프라가 구축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서울시와 협업을 통해 해외취업에 대한 심층상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오프라인 해외취업지원센터(가칭)를 설치할 계획이다. 또 다음달 개통 예정인 해외진출 포털 사이트인 ‘월드잡 플러스(WorldJob+)’를 통해 해외취업, 인턴, 봉사, 창업 등 해외진출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한곳에서 제공할 방침이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국내 고임금 문제 때문에 해외로 많이 나갔다. 이 기업들은 현지인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한국인 중간관리자를 아쉬워한다. 청년들이 해외에 있는 국내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 젊은 친구들이 가서 일하게 해줘야 한다. 이들이 현지 우리 기업의 필수 인력이 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적극 자금지원도 검토할 만하다.
해외 창업 역시 활성화해야 한다. 창업을 하려면 현지에서 취업을 해봐야 한다. 현지에서 일을 알아야만 창업을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기업들이 해외투자 때 국내에서 청년들과 동반해서 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
―중·장년층의 재취업 등을 위한 프로그램은.
“중·장년층의 대량 퇴직과 저출산·고령화로 핵심 노동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이다. 중·장년층의 재취업이 절실하다. 공단은 재설계 멘토링, 기본역량 강화교육, 기업맞춤형 취업훈련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훈련 참여 대상자를 기존 만 45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낮춰 훈련대상을 확대했다. 중·장년층이 다양한 인생 이모작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이·전직유형’, ‘취업유형’, ‘창업유형’ 등 맞춤식 훈련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학교의 직업교육, 기업의 재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한데.
“우리 직업교육훈련은 산업현장과 괴리돼 있다. 청년들이 대부분 고교와 대학 등을 거치며 토익과 학벌 등 스펙을 쌓은 뒤 취업에 나서기 때문이다. 공단에서는 일학습병행제 사업을 통해 청년들이 일터에 조기 진입해 일하면서 배우고 현장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특성화고를 대상으로 학교에서는 공통이론과 실습보완교육을 하고, 기업에서는 현장직무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도제학교를 시범도입해 운영 중이다.”
―공단이 자체 개발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소개하면.
“능력중심사회에서는 학벌이나 스펙이 아니라 개인의 직무능력을 기준으로 취업이나 보수, 승진 등 사회적 성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공단은 지난해까지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 기술, 태도를 산업별, 수준별로 표준화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직업별로 797개 개발했다.”
―NCS가 스펙으로 작용한다는 우려도 있다.
“NCS는 취업준비생에게 학점, 어학, 자격 등 무분별한 스펙이 아니라 직무 수행에 꼭 필요한 직무능력을 쌓을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기준이다. 불필요한 스펙 취득에 들어가는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어려움이나 애로사항이 적지 않은 듯하다.
“외국인 근로자는 사업장에서 언어소통의 어려움, 문화적 차이, 사업주와의 갈등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단은 언어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문통역원(70명)을 통해 근로자 해당국가 언어로 전문상담 서비스 제공 중이다. 외국인력지원센터(8개), 외국인력 소지역센터(31개)에서 한국어교육도 무료로 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정비 등 5개 직종에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직업능력개발 훈련을 하며 훈련비, 식비를 지급하고 있다.”
―공단의 향후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가.
“우리 공단의 최종 목표는 인적자원 개발·평가·활용을 통한 능력중심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공단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핵심과제는 ‘능력중심사회의 핵심 기제’라 할 수 있는 NCS를 사회 전반에서 활용하도록 확산해 나가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우선적으로 NCS를 채용, 인사관리, 교육훈련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사회 전반에 스펙초월 채용문화를 파급시키는 일을 추진 중이다. 우리 직원 중 700명이 기업 170만개를 담당해 지원을 하다 보니 부실화 우려가 있다. 인원 충원이 절실하다.”
대담=주춘렬 경제부장, 정리=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사진=김범준 기자
◆ 박영범 이사장은 ●1956년 서울 출생 ●서울고, 한국외국어대, 미국 코넬대 경제학 석·박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조정실장, 한성대 교무처장,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 위원장, 제29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위원(교육분과위원회),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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