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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충칭(重慶)시 위중구 쩌우룽루(鄒容路) 37호에 자리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 사방으로 담장이 세워져 있는 청사 건물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청사와 맞닿은 건물들은 재개발 공사로 이미 철거된 상태다. 충칭=신동주 특파원 |
잃어버린 조국을 찾겠노라 다짐하며 전의를 불태웠던 광복군 유적 중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이 건물은 그렇게 많은 세월을 견뎌냈지만 다시 70 성상이 지나도 온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곳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충칭의 관광명소 ‘인민해방기념비’처럼 광복군 총사령부도 새 단장을 하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변모하기를 기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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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전경. 1940년 충칭에 정착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5년 1월 치싱강(七星崗) 롄화츠(蓮花池) 38호인 이곳을 청사로 사용하다 광복을 맞이했다. |
1919년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일제의 박해가 심해지자 상하이를 떠나 8·15광복까지 항저우(杭州), 전장(鎭江), 창사(長沙), 광저우(廣州), 류저우(柳州), 충칭 등지를 전전해야 했다. 이곳도 1990년대 초 충칭 도시재개발 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몰렸으나 독립운동가 이달(李達) 선생의 딸이자 충칭시 인민대표대회(시의원) 대표로 활동했던 이소심(李素心·76)씨의 청원활동을 계기로 충칭시 문물보호단위(문화유적)로 지정됐다. 중국인 어머니를 둔 이씨는 2005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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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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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국 남성이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입구 벽에 붙은 임시정부 관련 자료를 읽고 있다.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충칭에 정착했으나 시내 양류가, 석판가, 오사야항 등으로 옮겨다니다 치싱강(七星崗) 롄화츠(蓮花池) 38호에서 광복을 맞이했다. 임시정부는 1945년 1∼11월 이곳을 청사로 사용했다. 충칭=신동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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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달 선생의 딸인 이소심씨가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에 전시된 사진 속 아버지를 가리키며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충칭=신동주 특파원 |
관람객 쉼터를 운영하는 마즈융(馬志勇) 사장은 “가게를 연 지 15일밖에 안 돼 아직 수익금을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수익금이 생기면 10∼20%를 진열관 운영비로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무위안이(牟元義) 진열관 관장은 “한국 분들이 항일의 과거사를 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올 하반기 진열관 홈페이지를 만들 계획”이라며 “진열관을 한·중 우호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씨는 “진열관은 한·중 양국이 힘을 합해 일제와 싸웠다는 증거이자 양국 교류의 공간”이라며 “한국의 번영은 애국지사들의 피와 생명으로 얻어진 것인 만큼 한국 정부가 유적 보호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정부가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고언이다.
충칭=신동주 특파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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