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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분단 70년, 대한민국 다시 하나로] 중국 충칭 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를 가다

입력 : 2015-02-17 18:02:55 수정 : 2015-02-17 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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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충칭 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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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중국 충칭(重慶)시 도심에 자리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 ‘쩌우룽루(鄒容路) 37호’라고 적힌 메모지를 들고 수소문 끝에 찾은 이곳은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1940∼1945)가 1940년 창설한 광복군의 보금자리다. 3층 건물인 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는 인구 3000만명을 자랑하는 직할시 충칭의 빌딩 숲 사이로 외롭게 서 있었다. 광복군 총사령부가 어떤 곳인가. 1945년 8·15광복 직전 한반도 진공작전을 추진했던 곳 아닌가. 하지만 한민족의 꺾이지 않는 항일의지를 증언하는 이 건물도 70년 세월의 때가 묻어 도시화 물결 속에서 흉물로 변해가는 중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행인의 접근을 금지하는 철문 틈 사이로 드러난 총사령부 건물 주위에는 산산이 조각난 벽돌과 폐건축자재가 널브러져 있었다. ‘상가 철거 이주’라고 적힌 붉은색 현수막도 반 이상 찢긴 채 건물에 나붙어 있었다. 폐허가 따로 없다. 이 건물이 상당기간 방치됐음을 증명하는 풍경들이다. 

중국 충칭(重慶)시 위중구 쩌우룽루(鄒容路) 37호에 자리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 사방으로 담장이 세워져 있는 청사 건물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청사와 맞닿은 건물들은 재개발 공사로 이미 철거된 상태다.
충칭=신동주 특파원
총사령부 건물을 둘러싼 담벼락 사이 좁은 골목길 공사표지판에는 ‘3월 초 공사가 재개된다’는 글만 적혀 있을 뿐 이곳이 어떤 역사적 현장인지를 전하는 자료 하나 없다. 행인 중에도 이곳에 담장이 쳐진 이유를 아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 정부가 광복군의 피와 땀이 맺힌 역사의 현장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한 사실이다. 우리 국가보훈처도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총사령부 건물 원형 보존을 주요 사업으로 정했지만 이역만리 중국 땅에서 수월할지는 미지수다.

잃어버린 조국을 찾겠노라 다짐하며 전의를 불태웠던 광복군 유적 중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이 건물은 그렇게 많은 세월을 견뎌냈지만 다시 70 성상이 지나도 온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곳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충칭의 관광명소 ‘인민해방기념비’처럼 광복군 총사령부도 새 단장을 하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변모하기를 기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전경. 1940년 충칭에 정착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5년 1월 치싱강(七星崗) 롄화츠(蓮花池) 38호인 이곳을 청사로 사용하다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진열관)으로 향했다.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옛터에 세워진 진열관 주변은 트럭의 경적소리와 작업인부들의 고성으로 소란스러웠다.

1919년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일제의 박해가 심해지자 상하이를 떠나 8·15광복까지 항저우(杭州), 전장(鎭江), 창사(長沙), 광저우(廣州), 류저우(柳州), 충칭 등지를 전전해야 했다. 이곳도 1990년대 초 충칭 도시재개발 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몰렸으나 독립운동가 이달(李達) 선생의 딸이자 충칭시 인민대표대회(시의원) 대표로 활동했던 이소심(李素心·76)씨의 청원활동을 계기로 충칭시 문물보호단위(문화유적)로 지정됐다. 중국인 어머니를 둔 이씨는 2005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입구.
그러나 무료 입장에도 불구하고 진열관을 찾는 관람객은 많지 않다. 임시정부·광복군 자료를 전시할 공간도 부족하다. 진열관에 따르면 한 달 관람객은 400∼500명에 불과하다. 이날도 호기심에 진열관 정문 담벼락에 걸린 안내문을 읽어보거나 진열관 안을 둘러보는 중국인은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김구 선생 흉상이 자리한 전람관 등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한 중국 남성이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입구 벽에 붙은 임시정부 관련 자료를 읽고 있다.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충칭에 정착했으나 시내 양류가, 석판가, 오사야항 등으로 옮겨다니다 치싱강(七星崗) 롄화츠(蓮花池) 38호에서 광복을 맞이했다. 임시정부는 1945년 1∼11월 이곳을 청사로 사용했다. 충칭=신동주 특파원
진열관 측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학술대회나 도서 출간을 고려하고 있지만 진열관은 자료실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 재중동포인 이선자(51) 진열관 부관장은 “임시정부의 활동은 어떤 한 나라나 민족이 아닌 인류평화적 시각에서 조명해야 한다”면서 “수집해야 할 자료도 많고 전시실을 새롭게 꾸밀 필요도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이달 선생의 딸인 이소심씨가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에 전시된 사진 속 아버지를 가리키며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충칭=신동주 특파원
진열관 측은 전체 5호 건물 중 1호 건물 1층 전시실을 더 넓히고 진열관 앞 주차장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인근 건물 2동을 사들여 새롭게 단장한다는 계획을 세운 지 오래다. 그러나 경제적인 벽에 막혀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

관람객 쉼터를 운영하는 마즈융(馬志勇) 사장은 “가게를 연 지 15일밖에 안 돼 아직 수익금을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수익금이 생기면 10∼20%를 진열관 운영비로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무위안이(牟元義) 진열관 관장은 “한국 분들이 항일의 과거사를 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올 하반기 진열관 홈페이지를 만들 계획”이라며 “진열관을 한·중 우호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씨는 “진열관은 한·중 양국이 힘을 합해 일제와 싸웠다는 증거이자 양국 교류의 공간”이라며 “한국의 번영은 애국지사들의 피와 생명으로 얻어진 것인 만큼 한국 정부가 유적 보호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정부가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고언이다.

충칭=신동주 특파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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