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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 맥적산 석굴의 삼존불. |
지난 2~6일 불교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의 중국 석굴 순례팀을 따라 4세기부터 실크로드에 꽃핀 찬란한 불교석굴문화를 돌아봤다. 중국 서북지방에 위치한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과 서역을 이어준 중요한 교역로로, 이 길을 따라 1~2세기 인도의 불교문화도 유입됐다. 그 대표가 감숙성의 돈황과 난주, 섬서성 천수 주변에 조성된 세계최대 석굴군이다. 당시 광활했던 실크로드는 생명의 핏줄이었을까. 깎아지른 절벽에 조각한 거대한 노천 대불(大佛)이며, 수 백개의 굴안에 안치된 아름다운 채색의 불상과 벽화를 보는 순간, 1600년 전의 숨결이 가슴에 박히면서 심장이 요동쳤다.
#북위의 열렬한 신심 담긴 맥적산 석굴=석굴순례는 섬서성 천수 맥적산(麥積山) 석굴 답사로 시작됐다. 천수는 컴파스 바늘 끝을 꽂으면 중국의 22개 성이 다 들어온다는 중국 중심부 서안(西安)에서 서쪽으로 328km 거리에 위치한다. 서안은 실크로드의 시발지이자 종착지. 서안을 보면서 중국이 천지개벽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하고, 거리에는 차가 범람한다. 지하철 1,2호선도 개통됐다. 이에 편승해 불교 역시 날로 발전하고 있다. 사찰은 대형화하고, 유적지는 접근성이 용이해 졌다. 중국은 현재 승려 25만, 재가불자 4억명으로 추산되지만, 10년 안에 13억 중국인구의 60%가 불자가 된다는 전망치도 나오고 있다. 중국 불교는 예부터 황실과 인연이 깊으며, 지금도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
천수에서 남동쪽으로 45km를 더 가야 만나는 맥적산 석굴은 낙양의 용문석굴, 돈황의 막고굴, 대동의 운강석굴과 함께 중국의 4대 석굴로 꼽힌다. 맥적산 가는 길은 서북지방의 황량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끝없이 펼쳐진 회색빛 능원에는 무수히 골이 패어 있고, 푸석푸석하고 메마른 기운이 대지를 휘감았다. 측백 계열의 묘목이 간헐적으로 조림돼 있으나, 황량함을 감추기에는 부족했다. 여기저기 흰 눈을 이고 있는 맥적산(142m)은 주변의 500리 가량이 산으로 이어져 있다.
석굴은 풍화작용으로 깎여 거대한 단애를 이룬 맥적산 남사면에 조성됐다. 역암 재질의 절벽 전체에 수백개의 굴을 파서 석굴사원을 조성한 것이다. 북위(386~534)와 서위, 북주, 수, 당, 송, 명에 걸친 석불, 소상(塑像), 부조, 벽화가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선반을 매달아 만든 잔도(棧道)를 오르며 석굴 안팎의 불상과 벽화를 감상하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놀라워 감정이 복잡했다. 그 옛날 진흙과 볏집, 계란, 찹쌀죽, 약초 등을 섞어 만들었다는 불상들은 대단히 정교하고 채색도 뛰어나다. 지금 수행승들은 없지만, 절벽을 지키고 있는 15m 높이의 삼존불이며, 불보살들의 넉넉한 미소에는 인류에게 보내는 행복과 희망이 설계돼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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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주 병령사 석굴의 대불. |
좌불의 경우 오른 손은 무릎 위에, 왼쪽 손은 배꼽에 대고 있으나 왼쪽 손목은 잘려 있다. 감숙성 박물관 그림에는 양쪽 손목이 다 훼손된 것으로 나타나 오른 손도 근래에 복원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169번 굴 안에 있는 ‘무량수불’은 5호16국 시대(4~5세기) 중국인들의 서방극락정토 신앙을 엿볼 수 있다. 황하에 도열된 기암괴석은 그 수려한 자태에 눈을 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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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막고굴 전경. |
백양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막고굴은 5층 높이에 길이가 1.8km에 이르는 기다란 동굴지대다. 많은 승려들이 사막의 모래 바람을 피해 굴을 파서 수행하던 곳이지만, 불교미술이 화려하게 꽃핀 동서양 문화의 용광로였다. 돈황은 8세기 말에 토번에 의해 점령당하고, 11세기 초 다시 서하의 지배에 들어간 뒤 쇠락의 길을 걸었다. 청나라 말에 영국의 고고학자 스타인이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2만점의 불교 고문헌과 회화류가 나왔다고 한다.
불교 석굴에는 저마다 번호가 붙어 있다. 불교 경전이 대량 감춰져 있던 돈황 15‧16호 석굴은 ‘장경동’이라고 부르는 데, 신라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발견됐던 곳이다. 장경동 앞에 섰을 때와 249호 굴에서 중국인 가이드가 손전등으로 벽에 그려진 고구려 수렵화를 비춰 줄 때는 왠지 반갑고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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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자은사 현장 법사 동상과 사리탑. |
수나라 때 조성됐다는 332호 4각형 석굴은 3개의 벽면에 각각 삼존불이, 뒷면에 와불(臥佛)이 안치돼 있는데,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다. 특히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는 미륵불 삼존상은 중생을 구제할 미래 부처여서 흥미로웠다. 대불전 불상은 35m 크기로,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웅장하고 화려했지만, 동굴 깊숙이 안치돼 접근이 어렵고, 사진촬영이 안 되는 것이 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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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법문사 보궁내 사리탑 전경. |
순례단의 가이드를 맡았던 김문금(金文錦·38)씨는 흑룡강성 하얼빈 출신으로, 서안의 외국어대학을 나와 여행가이드가 됐다. 친절함과 노력이 배어나온 불교지식, 온화한 미소까지 곁들여 순례자들을 내내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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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순례에 나선 원택 스님(왼쪽에서 두번째)과 상좌 일운 스님, 황순일 동국대 교수(사진 왼쪽), 문무왕 동국대 강사가 돈황 막고굴 장경동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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