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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에 꽃핀 찬란한 중국 불교석굴 문화 답사

입력 : 2015-02-10 09:31:07 수정 : 2015-02-10 09: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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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 스님과 함께 하는 불교석굴순례’…성철스님기념관 모티브

천수 맥적산 석굴의 삼존불.
2월의 실크로드는 사막 특유의 모래바람, 살갗을 에는 냉기, 코끝에 와닿는 쯔란 향이 매혹적이다.

지난 2~6일 불교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의 중국 석굴 순례팀을 따라 4세기부터 실크로드에 꽃핀 찬란한 불교석굴문화를 돌아봤다. 중국 서북지방에 위치한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과 서역을 이어준 중요한 교역로로, 이 길을 따라 1~2세기 인도의 불교문화도 유입됐다. 그 대표가 감숙성의 돈황과 난주, 섬서성 천수 주변에 조성된 세계최대 석굴군이다. 당시 광활했던 실크로드는 생명의 핏줄이었을까. 깎아지른 절벽에 조각한 거대한 노천 대불(大佛)이며, 수 백개의 굴안에 안치된 아름다운 채색의 불상과 벽화를 보는 순간, 1600년 전의 숨결이 가슴에 박히면서 심장이 요동쳤다.

#북위의 열렬한 신심 담긴 맥적산 석굴=석굴순례는 섬서성 천수 맥적산(麥積山) 석굴 답사로 시작됐다. 천수는 컴파스 바늘 끝을 꽂으면 중국의 22개 성이 다 들어온다는 중국 중심부 서안(西安)에서 서쪽으로 328km 거리에 위치한다. 서안은 실크로드의 시발지이자 종착지. 서안을 보면서 중국이 천지개벽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하고, 거리에는 차가 범람한다. 지하철 1,2호선도 개통됐다. 이에 편승해 불교 역시 날로 발전하고 있다. 사찰은 대형화하고, 유적지는 접근성이 용이해 졌다. 중국은 현재 승려 25만, 재가불자 4억명으로 추산되지만, 10년 안에 13억 중국인구의 60%가 불자가 된다는 전망치도 나오고 있다. 중국 불교는 예부터 황실과 인연이 깊으며, 지금도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

천수에서 남동쪽으로 45km를 더 가야 만나는 맥적산 석굴은 낙양의 용문석굴, 돈황의 막고굴, 대동의 운강석굴과 함께 중국의 4대 석굴로 꼽힌다. 맥적산 가는 길은 서북지방의 황량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끝없이 펼쳐진 회색빛 능원에는 무수히 골이 패어 있고, 푸석푸석하고 메마른 기운이 대지를 휘감았다. 측백 계열의 묘목이 간헐적으로 조림돼 있으나, 황량함을 감추기에는 부족했다. 여기저기 흰 눈을 이고 있는 맥적산(142m)은 주변의 500리 가량이 산으로 이어져 있다.

석굴은 풍화작용으로 깎여 거대한 단애를 이룬 맥적산 남사면에 조성됐다. 역암 재질의 절벽 전체에 수백개의 굴을 파서 석굴사원을 조성한 것이다. 북위(386~534)와 서위, 북주, 수, 당, 송, 명에 걸친 석불, 소상(塑像), 부조, 벽화가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선반을 매달아 만든 잔도(棧道)를 오르며 석굴 안팎의 불상과 벽화를 감상하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놀라워 감정이 복잡했다. 그 옛날 진흙과 볏집, 계란, 찹쌀죽, 약초 등을 섞어 만들었다는 불상들은 대단히 정교하고 채색도 뛰어나다. 지금 수행승들은 없지만, 절벽을 지키고 있는 15m 높이의 삼존불이며, 불보살들의 넉넉한 미소에는 인류에게 보내는 행복과 희망이 설계돼 있는 듯 했다.

난주 병령사 석굴의 대불.
#극락정토 펼쳐놓은 병령사 석굴=천수에서 난주(蘭州)까지는 버스로 4시간 거리(300km). 난주에서 병령사(炳靈寺) 석굴을 가려면 황하 상류 댐 유가협에서 다시 모터보트를 타고 50분 더 들어가야 한다. 황하 협곡에 조성된 병령사 역시 중국과 서역을 잇는 통로로, 무수한 승려들이 머물며 선수행을 발전시켰던 곳이다. 기암괴석 사이로 나 있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멀리 산벽에 조각된 28m 높이의 현암 좌불이 눈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석굴은 상하로 나뉘어져 산기슭을 따라 2km 가량 이어져 있다. 홍사암의 바위산에 북위 때부터 조성됐다는 석굴의 총수는 195개. 원나라 이후에는 라마불교가 유행해서 라마교 양식의 불상도 발견된다. 다양한 불상과 보살상, 비천상은 저마다 빼어난 조각과 색채미를 자랑했다.

좌불의 경우 오른 손은 무릎 위에, 왼쪽 손은 배꼽에 대고 있으나 왼쪽 손목은 잘려 있다. 감숙성 박물관 그림에는 양쪽 손목이 다 훼손된 것으로 나타나 오른 손도 근래에 복원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169번 굴 안에 있는 ‘무량수불’은 5호16국 시대(4~5세기) 중국인들의 서방극락정토 신앙을 엿볼 수 있다. 황하에 도열된 기암괴석은 그 수려한 자태에 눈을 떼기 어렵다.

돈황 막고굴 전경.
#동서양 문화의 용광로 돈황 막고굴=마지막 석굴 코스인 감숙성 돈황은 광활한 타클라마칸 사막 동쪽 언저리에 있다. 타클라마칸의 뜻이 ‘돌아올 수 없는 땅’이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난주에서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서북쪽으로 1137km를 달려 오전 7시쯤 돈황에 도착하니 아직 사위가 어둡고, 냉기가 엄습한다. 돈황은 ‘사막의 높은 곳’을 뜻하는 막고굴(莫高窟)과 명사산 월아천 등 실크로드 유적지가 있어 중국 정부가 관광도시로 전격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해 막고굴 가까이 돈황역을 신설했고, 시내 곳곳에는 최신식 호텔과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사막에는 4차선 도로가 뚫려 있다. 한마디로 돈황도 천지개벽중이다.

백양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막고굴은 5층 높이에 길이가 1.8km에 이르는 기다란 동굴지대다. 많은 승려들이 사막의 모래 바람을 피해 굴을 파서 수행하던 곳이지만, 불교미술이 화려하게 꽃핀 동서양 문화의 용광로였다. 돈황은 8세기 말에 토번에 의해 점령당하고, 11세기 초 다시 서하의 지배에 들어간 뒤 쇠락의 길을 걸었다. 청나라 말에 영국의 고고학자 스타인이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2만점의 불교 고문헌과 회화류가 나왔다고 한다.

불교 석굴에는 저마다 번호가 붙어 있다. 불교 경전이 대량 감춰져 있던 돈황 15‧16호 석굴은 ‘장경동’이라고 부르는 데, 신라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발견됐던 곳이다. 장경동 앞에 섰을 때와 249호 굴에서 중국인 가이드가 손전등으로 벽에 그려진 고구려 수렵화를 비춰 줄 때는 왠지 반갑고 뿌듯했다. 

서안 자은사 현장 법사 동상과 사리탑.

수나라 때 조성됐다는 332호 4각형 석굴은 3개의 벽면에 각각 삼존불이, 뒷면에 와불(臥佛)이 안치돼 있는데,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다. 특히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는 미륵불 삼존상은 중생을 구제할 미래 부처여서 흥미로웠다. 대불전 불상은 35m 크기로,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웅장하고 화려했지만, 동굴 깊숙이 안치돼 접근이 어렵고, 사진촬영이 안 되는 것이 흠이었다.

서안 법문사 보궁내 사리탑 전경.
#실크로드를 떠나며=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유서깊은 사찰과 중국 특유의 향신료, 고품격의 가이드를 만난 것도 적잖은 기쁨이었다. 서안의 법문사에는 희귀한 불지사리(붓다의 손가락뼈)가 안치돼 있고, 자은사는 당나라 고승이자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의 저자 현장 법사의 숨결이 묻어 있다. 과거 법문사내 진신보탑 지하에 안치된 불지사리는 지금은 새로 지은 어머어마한 규모의 법문사 보궁 앞 사리탑(148m)에 보존돼 있다. 음식점마다 코를 찔렀던 쯔란과 고소 향도 떠나올 때는 은근히 정이 들었다.

순례단의 가이드를 맡았던 김문금(金文錦·38)씨는 흑룡강성 하얼빈 출신으로, 서안의 외국어대학을 나와 여행가이드가 됐다. 친절함과 노력이 배어나온 불교지식, 온화한 미소까지 곁들여 순례자들을 내내 즐겁게 했다.

석굴순례에 나선 원택 스님(왼쪽에서 두번째)과 상좌 일운 스님, 황순일 동국대 교수(사진 왼쪽), 문무왕 동국대 강사가 돈황 막고굴 장경동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 석굴 순례에는 원택 스님과 상좌(제자) 일운 스님, 황순일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문무왕 동국대 강사 등이 동행해 자세한 도움말을 줬다. 멀고 험한 여정이었지만 실크로드에 새겨놓은 고승들의 숨결은 현대인의 이기적 삶에 묵직한 해답을 안겨줬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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