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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와 마주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오정일 작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는 섬세한 작업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일부러 등 뒤 모습을 고집했다. |
왜 그는 한두 가닥의 붓으로 그림을 그릴까. 그것도 머리카락 같은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선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회화에서 붓터치가 정신의 물질적 발현이라면 나는 붓 털을 최소단위로 축소시킴으로써 정신과 물질의 레벨을 가능한 극소단위로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 태도는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우주를 유영하는 극미립자의 존재처럼 자유로운 의식의 에너지를 고양시켜 준다.”
전시장 주변은 70년대와 80년대의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지어진 주택들과 건물들로 가득하다. 낡았지만 지난 시대의 추억과 이야기들이 서린 곳이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자신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재개발 논의가 장기화될수록 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세뇌당하게 된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태도가 점차 ‘내가 이 사람을 만나면 무슨 이득이 있을까?’, ‘저건 얼마짜리인가?’라고 묻게 되면서 경제적 가치가 점차 으뜸으로 자리하게 된다. 경제적 보상만 따르면 언제든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하여 더 이상 애착을 갖지 않게 되며, ‘이웃사촌’이나 ‘공동체’라는 말은 점차 무의미한 말로 들리게 된다.”
그는 한 가닥의 붓털로 경제적인 가치가 모든 것의 잣대가 되는 도시의 삶에서 ‘느리게 살아가기’, ‘모든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가기’라는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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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늘날 전시장 주변 풍경을 그린 ‘눈 위의 고양이들’. |
“개발과 재개발로 이어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을 경제적인 기준으로 판단해 왔다. ‘우리는 언제까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경제적인 잣대로 가늠하여 판단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다.”
10년 넘게 작업해 겨우 7평을 채운 전시 작품들에 우리는 얼마의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아니면 작가가 얼마나 태만했으면 작업량이 요정도인가? 작가가 얼마나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제대로 된 전시장에 초대를 받지 못하였을까? 하는 의문들이 쏟아진다.
“경제적인 가치로 타인의 삶을 판단할 수 있을까? 다시금 묻고 싶을 뿐이다.” (02)6160-8445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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