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는 국민 화해와 개혁 과정을 거친 뒤 내년 하반기에 총선을 실시하겠다며 대략적인 민정 이양 일정만 밝힌 상태다.
지난달 22일 쿠데타 후 시위와 폭력 사태는 거의 사라져 군정은 치안 확보에 성공했으나 언론 검열, 집회 금지, 반대파 소환 및 체포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군부는 군정 첫 사업으로 농민들에 대한 정부의 미지급 쌀수매가 지불, 생필품 및 연료 가격 동결 등 대중인기 정책을 펴는 등 민심 끌어안기에 나섰다.
쿠데타 후 소규모 시위와 군부에 저항하기 위한 해외 망명조직 구성 등의 움직임이 일었으나 조직적이나 강력한 쿠데타 반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민정 이양 계획 불투명 = 쿠데타 주역인 프라윳 찬-오차 육군참모총장은 "평화와 개혁을 추진하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선거가 늦춰질 것"이라며 선거는 쿠데타 후 약 15개월 뒤인 내년 8월께나 실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분열 상태인 태국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최소 2~3개월이 걸리고 새 헌법과 과도정부를 마련하는 데 1년가량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작업들이 완료된 이후에야 총선이 시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민정이양 기간은 지난 2006년 쿠데타 때와 비슷하다.
최고 군정 당국인 국민평화질서회의(NCPO)의 의장이기도 한 프라윳 총장은 또 이르면 오는 8월에, 늦어도 9월 초에 과도 정부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더는 구체적인 민정 이양 계획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자신이 과도 정부의 총리를 맡을 것이냐는 질문에도 확답을 피하고 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실질적으로 이끄는 정부를 몰아낸 군부는 친탁신 진영의 재집권을 막으려고 선거제도와 권력구도를 재편할 것으로 예상하나, 군부는 아직 이에 대한 구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군부는 선거 때마다 친탁신 진영이 승리하는 만큼, 이를 막으려고 선거로 뽑는 하원 의원 수를 줄이거나 의회, 내각 등 선거로 구성되는 권력 기관의 권한을 축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동시에 정부와 의회를 견제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 및 사법부와, 국가반부패위원회 등 독립기관들의 권한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언론과 여론 지도층은 신속한 민정 이양을 요구하면서도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군정의 행보를 지켜보는 일종의 밀월 기간이 지속하고 있다.
◇ 치안 확보·쿠데타 저항 세력 봉쇄 = 쿠데타 후 치안 상황은 대폭 개선됐다. 지난해 말부터 반년 이상 계속됐던 반정부 시위가 중단됐으며, 수류탄 공격이나 총격 등의 폭력 사태도 거의 사라졌다.
이런 변화 뒤에는 군부의 대대적인 반대파 소탕과 언론 검열, 시위 및 집회 금지가 자리 잡고 있다.
군부는 쿠데타 직후부터 잉락 친나왓 전 총리 등 전 정부 인사들과 친탁신 진영인 '레드 셔츠' 운동가, 학자, 언론인 등 400명가량을 소환했다. 이들 중 일부는 계엄령 위반으로 군법재판소에 넘겼으며, 석방한 인사들 대부분은 정치활동 중단 서약을 하고 출국 금지됐다.
군부는 5명 이상의 시위에 참여하면 군법재판소에 부치겠다고 경고하고, 영화 '헝거 게임'(The Hunger Games)에 나오는 독재 저항 제스처인 '세 손가락 인사'를 하면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신문, 방송 등 정규 언론에 대한 검열을 강화한 결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쿠데타 반대 여론이 퍼지자 군부는 소셜 미디어 규제를 계획했다가 비난 여론에 부딪혀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군부의 강력한 통제 때문에 쿠데타 직후 발생했던 소규모 게릴라식 시위도 더는 열리지 않고 있으며, 캄보디아에 망명 중인 레드셔츠 지도자가 군부에 저항하기 위한 망명조직을 결성했다고 밝혔으나 큰 반향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국내 레드셔츠 운동가들은 군부에 의해 소환돼 조사를 받거나 기소돼 세력이 크게 약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군부는 레드 셔츠 소환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탁신 전 총리, 잉락 전 총리 등 탁신 일가도 군부를 반대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삼가고 있다. 이는 군부가 잉락 전 총리 등 탁신 일가를 범법 혐의로 처벌하거나 재산을 몰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 '포퓰리스트' 정책으로 민심 유혹 = 군부는 쿠데타 반대 여론을 잠재우고 민심을 끌어안으려고 대중 인기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군부는 정권 장악 후 첫 사업으로 잉락 전 총리 정부의 밀린 쌀 수매대금 지급을 단행했다. 잉락 정부의 쌀 수매 사업에 참여했다가 쌀값을 지급받지 못한 농민 8만여 명에게 수매대금 550억 바트(약 1조 7천억 원)를 지급해 친탁신 정권의 최대 지지세력이었던 농민들을 레드 셔츠 진영에서 이탈시켰다.
또 경유, 액화석유가스(LPG) 등 연료에 대해 가격 상한제 및 동결제를 실시했으며, 205개 소비자 생필품은 오는 11월까지 6개월 동안 가격을 동결했다.
월드컵 중계권자가 월드컵 경기를 무료로 방송할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자 군부는 "국민에게 행복을 돌려주겠다"며 공공 기금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 경기를 무료로 방송하도록 했다.
군부는 중소기업 대출 지급보증과 농민 저리 주택자금 융자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에는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대출금 회수를 무리하게 집행하지 말라고 지시했으며, 고리 대금업자들에게는 단속을 경고했다.
이와 함께 군부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시위 사태로 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이 때문에 국민 불만이 높은 점을 고려해 잇따라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군정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올해 배정된 예산을 조속한 시일에 최대한 많은 규모를 집행하고, 경기 부양 효과가 높은 도로, 철도 등 인프라 건설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군정의 이 같은 정책은 대중인기정책으로 농민, 도시 빈민 등 저소득층의 지지를 받았던 탁신 전 총리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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