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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교폭력, 칸트의 ‘정언명령’으로 접근하자

입력 : 2014-03-04 21:32:05 수정 : 2014-03-04 21: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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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철학자인 이마누엘 칸트에 의하면 모든 도덕의 기초는 ‘정언명령(定言命令)’을 기반으로 한다. 정언명령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라”, “∼해서는 안 된다”라고 명령하는 도덕을 말한다. 예컨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정언명령이다. 반면, ‘가언명령(假言命令)은 가정을 전제로 성립되는 도덕적 명령이다. “양심을 잃고 싶지 않으면 도둑질하지 말라”와 같은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양심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도둑질을 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담고 있다.

정언명령은 ‘보편화 가능성의 원리’, ‘인간 존중의 원리’, ‘자율성의 원리’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면 무(無)목적성과 무조건성을 갖는다. 이런 정언명령을 “학교폭력은 안 된다”라는 도덕률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학교폭력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나도 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학교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라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언명령이다. ‘학교폭력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면’이란 가정, ‘폭력 피해자가 되는 것을 상관하지 않겠다면’이란 가정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학교폭력이 왜 나쁜가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어 상황에 따라 이유에 따라 폭력 자체를 정당화하는 명령이 되고 만다.

한병선 교육평론가
정언명령이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도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도덕률이 정언명령인지 아닌지는 그 도덕률이 누구나 지켜야 할 보편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보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많다.

경우에 따라 정언명령은 도덕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존재론적으로는 오류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예컨대 ‘당신이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당신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규범이 성립할 수 있다. 이는 분명 가언명령이다. 칸트의 주장과는 달리 정언명령이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칸트의 정언명령은 도덕을 기반으로 한 정의가 때와 장소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점이다. 때문에 정언명령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무조건성’이다. 칸트가 정언명령을 도덕의 참모습으로 강조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정언명령이란 ‘안 된다면 결코 안 된다’는 명제다. 이는 결과적으로 도덕에 어떤 이유도 부여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각급 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됐다. 이를 학교폭력 문제에 적용해보자. ‘학교폭력은 안 돼’라고 한다면 이는 정언명령이 될 수 있다. ‘무조건 폭력은 안 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이유나 변명은 필요치 않다.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준칙이 된다는 점, 인간 존중 등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는 점에서 정언명령이란 도덕률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학교폭력을 관리할 수 있는 진일보한 이론적 틀이 될 수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이론적 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병선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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