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명령은 ‘보편화 가능성의 원리’, ‘인간 존중의 원리’, ‘자율성의 원리’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면 무(無)목적성과 무조건성을 갖는다. 이런 정언명령을 “학교폭력은 안 된다”라는 도덕률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학교폭력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나도 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학교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라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언명령이다. ‘학교폭력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면’이란 가정, ‘폭력 피해자가 되는 것을 상관하지 않겠다면’이란 가정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학교폭력이 왜 나쁜가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어 상황에 따라 이유에 따라 폭력 자체를 정당화하는 명령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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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병선 교육평론가 |
경우에 따라 정언명령은 도덕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존재론적으로는 오류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예컨대 ‘당신이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당신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규범이 성립할 수 있다. 이는 분명 가언명령이다. 칸트의 주장과는 달리 정언명령이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칸트의 정언명령은 도덕을 기반으로 한 정의가 때와 장소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점이다. 때문에 정언명령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무조건성’이다. 칸트가 정언명령을 도덕의 참모습으로 강조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정언명령이란 ‘안 된다면 결코 안 된다’는 명제다. 이는 결과적으로 도덕에 어떤 이유도 부여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각급 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됐다. 이를 학교폭력 문제에 적용해보자. ‘학교폭력은 안 돼’라고 한다면 이는 정언명령이 될 수 있다. ‘무조건 폭력은 안 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이유나 변명은 필요치 않다.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준칙이 된다는 점, 인간 존중 등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는 점에서 정언명령이란 도덕률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학교폭력을 관리할 수 있는 진일보한 이론적 틀이 될 수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이론적 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병선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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