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를 떠나 불법(佛法)이 깃드는 절집
조선 세조와 정이품송의 전설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속리산과 법주사는 수백년 전부터 널리 알려진 명소. 속리산 법주사. 속리산과 법주사는 언제부턴가 이같이 하나의 단어처럼 쓰이고 있는데, 그 이름에 담긴 뜻도 일맥상통한다. ‘속리(俗離)’라는 산 이름은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이고, ‘법주(法住)’라는 절 이름은 ‘불법이 머무는 탈속의 절집’이라는 뜻인데, 속리가 곧 불법이고, 불법이 곧 속리가 아니겠는가.
법주사로 드는 속리산 자락에 자리한 정이품송은 지금 여러 개의 받침대에 의지해 있지만, 수려하고 기품 있는 자태는 여전하다. 신라 진흥왕 때 불법을 구하러 천축국으로 건너간 의신조사가 경전을 얻어 귀국해 창건했다는 법주사는 국내 유일의 목조 5층탑인 팔상전을 비롯해 쌍사자석등, 석연지(제64호) 등 국보 3점을 보유하고 있다. 법주사의 이 국보 3점은 문화재에 별다른 식견이 없는 사람이 봐도 어렵지 않게 식별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조형미가 뛰어날 뿐 아니라 그윽한 정취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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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팔상전과 금동미륵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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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의 속리산 법주사에는 익히 알려진 국보·보물 외에도 크고 높은 풍경이 여럿이다. 마름모꼴로 생긴 거대한 바위인 추래암 안쪽에는 보물 216호인 마애여래의상이 자리하고 있다. 추래암 뒤로 보이는 5층 목탑이 국보 제55호인 팔상전이다. |
보은의 또 다른 명소인 선병국 가옥은 속리산에서 발원한 삼가천의 물줄기 한가운데 ‘육지 속 섬’ 형상의 땅에 자리하고 있다. 선병국 가옥이 들어선 곳은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즉 물 위에 뜬 연꽃 모양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천하제일의 길지로 여겨지는 지형이다. 호남 제일의 만석꾼이었던 보성선씨 일가는 전국을 돌며 ‘큰 인물이 나올 명당’을 찾다 이곳에 대저택을 짓고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옮겨 왔다. 당시 이 집은 조선에서 가장 큰 민가였다. 흔히 이 집을 ‘99간 선병국 가옥’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99칸은 대갓집이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실제 이 집은 서당인 관선정까지 합치면 134칸에 달했다. 또 경복궁 중건에 참여한 궁궐 도편수가 이 집 건축을 맡았다. 조선시대 왕실이 아닌 민가는 99간 이상을 짓지 못하는 규제가 있었는데, 정부의 통제력이 와해된 구한말이어서 이토록 커다란 집을 왕실 도편수까지 동원해 지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은 조선시대 전통 한옥과는 건축양식이 많이 다르다. 조선시대 잘 사용하지 않던 공(工)자 형태로 안채와 사랑채를 꾸몄다. 또 기단을 다듬은 장대석으로 쌓았는데, 이는 궁궐에서 사용하는 형식이었다. 툇마루 밑을 붉은 벽돌로 쌓고, 마당의 정원을 단을 쌓아 조성한 것도 전통 양식이 아니다. 이같이 지어진 집은 더할 나위 없이 수려하고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커서,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보은=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 여행정보(지역번호:043)=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경부고속도로의 청원 분기점에서 청원·상주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보은 나들목으로 나오면 바로 보은 읍내다. 보은 읍내에는 모텔이 별로 없어, 숙소는 법주사 입구에서 찾는 게 편하다. 가족 단위라면 속리산 말티재 자연휴양림(543-6282)을 추천할 만하다. 선병국 가옥(543-7177)에서도 민박체험을 할 수 있다. 식당으로는 한정식을 내놓는 ‘경희식당’(543-3736)이 유명하다. 법주사 입구에 산채비빔밥집이 즐비하다. 속리산 등산 코스는 크게 4개로 나뉘는데, 문장대 코스를 가장 많이 찾는다. 법주사지구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면 문장대까지 왕복 5시간쯤 걸린다. 정이품송의 부인으로 불리는 서원리 소나무,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도 보은의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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