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일병 사망 원인’ 두고 날선 공방
“망인이 돌아가신지 올해로 30년이 됐습니다. 사실관계 첨예하게 대립하고 법의학자의 의견도 엇갈리는 사건입니다. 여러분도 장래 법조인이 되는 데 진짜 공부가 될 겁니다.”
28일 오후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모의법정.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판사 강민구) 심리로 열린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실제 재판을 보기 위해 300여명이 방청석(250석)은 물론 법정 복도까지 가득 메웠다.
이날 재판은 서울고법이 법학도와 지역주민에게 실제 재판을 손쉽게 접하게 하기 위해 주최한 ‘캠퍼스 열린 법정’ 행사로 진행됐다. 지난 3월 연세대에서 행정재판을 연 데 이어 두 번째다
‘허 일병 사망사건’은 1984년 4월 발생한 대표적 군(軍) 의문사 사건이다. 당시 강원도 화천 육군 7사단에 복무하던 허 일병은 3발의 총상을 입은 채 숨졌고, 군 당국은 허 일병의 사인을 자살로 발표했다.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상관이 우발적으로 허 일병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고 밝혔고, 군 당국은 재차 반대의 결과를 내놓으면서 20여년간 진실 공방이 오갔다. 결국 유족은 2010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지난해 1심은 “허 일병의 사인은 타살”이라며 “국가는 총 9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날도 양측의 날선 공방이 오갔다. 양측 변호인들은 방청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쟁점을 정리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고, 학생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재판에 몰입했다.
유족 측 변호인은 “사고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을 발사해 사망할 수는 없으므로 사인은 자살 아니면 타살”이라며 “자살이라고 감정한 법의학자들도 이 사건이 자살이라면 매우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측은 “고인에게 명복을 빌지만, 국가와 군의 명예도 지켜줘야 한다”며 “허 일병이 입은 세 번의 총상의 순서와 시간적 간격을 보면 가슴에 먼저 발사한 뒤 머리에 발사해 자살했다는 군 당국의 조사에는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허 일병의 부친 허영춘씨는 “국방행정이 국민이 믿을 수 있게 투명해야 한다. 단 한 명의 군인이라도 내 아들처럼 군인이라도 죽음의 진실이 왜곡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재판의 결과를 떠나 30년이란 세월동안 이 죽음이 어떤 죽음이었는지에 대해 국가기관이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유족으로서 얼마나 허탈했겠는가 싶다”며 “국가기관 종사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유족을 위로했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으로 변론절차를 마무리 짓고 8월22일 오전 10시 서울고법 405호 법정에서 판결을 선고하기로 했다.
재판을 지켜본 성균관대 로스쿨 2학년 허성훈(28)씨는 “법학 공부를 하면서도 실제 재판에 가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따르는데 재판부가 직접 찾아와 재판을 열어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호진(29)씨는 “엄숙하고 딱딱할 줄만 알았던 재판을 재판부가 알기 쉽게 진행해 줘서 가깝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조성호 기자 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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