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 “인위적 상처로 보여”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우다 주검으로 발견돼 타살 의혹이 일었던 고 장준하 선생에 대한 검시가 37년 만에 처음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검시의가 ‘인위적인 상처로 보인다’는 1차 의견을 내며 타살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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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12월24일 서울 YMCA에서 개헌 청원 백만인서명운동을 발표하는 장준하 |
장 선생의 아들 장호권(63)씨는 “의문사진상위원회에서 유골 감정 등을 검토했으나 ‘두 번 죽인다’는 반대 여론 때문에 못하다가 묘를 이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검시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어 “검시 결과 후두부에 망치 같은 것으로 맞아 동그랗게 함몰된 흔적이 발견됐다”며 “인위적인 상처로 검시의가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유족 측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므로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기념사업회가 장준하공원 제막식인 17일 공식 발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 장준하 선생은 언론인과 정치인으로 생활하다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당했다. 1918년생인 장 선생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대위로 근무했고 박 전 대통령은 일제 만주군 중위로 근무하는 등 박정희 대통령과 정치적 라이벌 관계였다. 1975년 8월17일에는 산악회원 40여 명과 함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약사봉에 올랐다가 14m 높이의 낭떠러지에서 실족해 사망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뉴스팀 new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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