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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건축가 김백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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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8-13 18:18:36 수정 : 2012-08-13 18: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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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인테리어·미술은 삶의 이야기일 뿐…
“내 절실한 화두는 내면에 충실한 작가”
그를 한 가지 틀로 규정한다는 것은 무례(?)였다. 아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저지르는 폭력이었다. 그는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아트디렉터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직함이 딱 떨어지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겐 왠지 불편하기까지 하다. 한 꼴로 호칭해야 직성이 풀리니 어쩔 수 없이 그를 잠정적으로 건축가라 부르기로 했다. 한 해에 30여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건축계에선 이름이 꽤 알려진 김백선(46)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3년치의 일감이 쌓여 있어 요즘 일에 치여 산다는 그를 서울 강남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경계 넘나듦이 본질에 더 다가설 수 있는 지름길임을 강조하는 건축가 김백선씨. 그는 “소금 장인이 제 손으로 소금농사를 다 지어놓고도 태양과 바람에 그 모든 공을 돌리듯, 자연 앞에 늘 겸손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장인들의 성숙한 삶의 자세에서 자의식 가득한 예술가의 손길만으로는 미칠 수 없는 궁극의 미가 탄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해온 프로젝트 파일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은 흡사 도서관 서고를 방불케 한다. 직원들의 도면설계 책상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고 공간 모형과 그림 판넬들이 벽선에 세워져 있는 모습은 여느 사무실과 다른 작업실 풍경이다. 도자 등 장인들의 작품도 진열돼 있어 주인의 마음 밭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는 장래가 촉망됐던 화가였다. 대학 4학년 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미술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초대전 러브콜도 쇄도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성의 틀에 자신을 맞춰 가야 하는 현실이 싫었다. 탈출구로 유학도 고려해 보았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현실과 타협하며 그럭저럭 유명작가입네 하며 살아가는 것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돈 없는 작가로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틀과 쉽게 타협하면 개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작작업을 하는 이들에겐 독약과도 같은 것이다.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내면의 소리에 충실한 행복한 작가, 좋은 작가는 절실한 화두가 됐다.

이즈음 그는 큰 스케일의 공간작업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건축 관련 일을 하게 되면 고객이 있어 세상과 더불어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포트폴리오를 들고 무작정 인테리어 디자인사무소를 찾았다. 사장은 아무 말도 없이 한 달여를 타일 등 자재를 나르거나 현장 인부들의 먹을거리 심부름만 시켰다. 먼지 쌓인 공사현장의 시멘트바닥에 인부들과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셔도 마냥 행복했다. 모든 얽매임의 사슬들이 하나 둘 끊어져 나가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영혼의 자유를 비로소 체험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사장은 미술 쪽에서 큰 상까지 받은 그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한 달여를 젊은 놈의 일시적 객기가 아닌지 지켜 본 것이다. 본격적으로 공간디자인에 투입되면서 그는 마음껏 무언가를 해보면서 열정을 다시 얻었다. 대신 그는 본명인 김훈이라는 이름을 버렸다. 화가 김훈이라는 고정된 틀을 벗어던진 것이다.

그는 10여년째 자신의 디자인 사무실을 꾸려 오고 있다. 이제야 건축과 인테리어, 미술의 경계에서 자유로워졌다. 모두가 기술과 감성이 결합한 공간의 놀이라는 점에서 통섭이 된다. 먹그림의 유희적 표현들이 ‘공간의 집’을 만들어 간다. 무형문화재인 장인들과 협업을 하기도 한다. 그가 디자인한 목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등을 장인들의 솜씨로 만드는 형식이다. 일감의 50%가 대기업 프로젝트일 정도로 그의 이런 시도들은 호평을 받고 있다.

산속에 다소곳이 안겨 있는 모습이 전통 초가를 연상시키는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의 양평 별장.
을지로에 있는 동국제강 사옥의 회장실 등 주요 공간디자인도 그의 솜씨다. 한옥 목재 사용방식과 한지 창호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우리 원형건축에서 차용했다. 분위기 있는 서재 연출도 눈길을 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인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T-라운드(바)는 우후죽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의 양평 별장과 지난해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인 이용백의 작업실도 그의 작품이다

패션디자이너와 함께 패션쇼 전시공간을 디자인하기도 하는 그는 공간의 가치 부여에 관심이 많다. 중심엔 우리 문화의 향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향유가 곧 가치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경첩 하나에도 주석장의 손길을 고집하는 이유다. 소품의 기품은 거기서 나온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한옥 건축도 소목장을 비롯한 장인들의 손길에서 나오는 기품 있는 멋스러움을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잠실에 세워질 123층의 제2롯데월드 주거공간도 그가 디자인을 맡았다. 하나은행의 PB센터는 시서화 품격이 묻어나도록 디자인했다. 붓선이 바로 지붕선이 되기도 하는 그의 먹그림이 건축공간에 걸리기도 한다. 그는 이제야 먹그림의 맛을 알 것만 같다고 한다.

그에게 건축과 인테리어, 그리고 미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의 삶의 이야기일 뿐이다. 영역을 나누는 것은 더 이상 그에게는 무의미한 일이다. 소통과 공감의 장이면 그만이다. 우리는 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건축가가 지은 공간에서 디자이너가 만든 의자에 앉아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며 도예가가 빚은 찻잔에 농부가 수확한 차를 담아 마신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우리는 이미 다양한 문화의 스펙트럼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2009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설치작품. 국수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는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이렇듯 조화롭게 공존하는 문화의 다양성을 중시한다. 장르를 구분 짓고 서로에게 다른 가치기준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순수미술과 공예를, 그리고 공예와 디자인을 구별하고 장르적 절대가치와 우열을 논한다. 현대 디자인의 잣대로 전통공예를 재단하고 순수미술은 생활미술을 경계한다. 이러한 경계의식은 더 나아가 예술과 비예술을, 예술적 삶과 비예술적 삶을 구분하려 든다.

그는 다양한 문화를 장르적 편견 없이 모두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봐 줄 것을 촉구한다. 전통 장인과 함께하는 전시를 위해 기꺼이 아트디렉터를 자청하는 이유다.

“우리는 정원을 거닐며 자연과 호흡할 때 나무와 들풀, 화초를 구분해 생명의 가치를 비교하거나 경중을 따지지 않습니다. 거대한 수목이든 가녀린 들풀이든 이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전해 주는 생명의 에너지와 그 아름다움에 감동할 뿐입니다. 조화롭게 상생하는 정원의 나무와 수풀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차 한 잔 마시면서도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일상처럼 말입니다.”

그는 말한다. 예술·공예·디자인의 경계를 허물고 바라보면 사물의 본질과 아름다움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고.

“유심히 들여다볼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것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보다는 마음으로 전해지는 만든 이의 심상입니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손길로 빚어집니다. 그 손길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예술적 열망이기 이전에 성실한 삶에서 비롯된 간절함입니다.”

그는 전통 찻사발의 비정형의 정형이 현대건축의 감성과 교감하는 모습에서 더욱 확신을 갖는다. “비규정의 규정이 현대건축의 큰 흐림이라는 점에서 이젠 건축가답지 않았을 때 제대로 된 건축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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