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둘러싼 파문이 국가 기강 문제로 번지고 있다. 협정 처리과정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도 않은 채 국무회의에서 비공개 처리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관련 부처들이 서로 ‘네탓’을 하더니 알고 보니 대통령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누가, 왜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비공개 추진하게 됐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번 협정과 관련해 책임론이 거론되는 인물은 김황식 국무총리,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수석비서관급)이다. 김 총리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국무회의를 주재한 책임자다.
김 국방장관의 경우 이 협정이 애초 국방부 소관이었다는 점에서, 김 외교장관은 외교부문 책임자로서 이 협정을 최종 마무리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책임선상에 서 있다. 김 기획관은 이번 사태를 주도한 장본인으로 지목을 받는다. 외교부 관계자는 2일 “김 기획관이 과거 교수 시절 쓴 글을 보라. 한·일 안보협력 강화가 평소 지론이었다”고 김 기획관 주도설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기획관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외교부가 일본 요청으로 우리 국무회의와 일본 각의(閣議) 처리 후에 공개하기로 했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양국 합의대로 공개하려던 절차가 세계일보의 보도로 먼저 공개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번 비공개 추진 전말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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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19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한 김관진 국방장관(오른쪽)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팔을 짚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네고 있다. 두 장관은 ‘밀실 처리’ 논란에 휩싸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관련 부처 수장들이다. 이제원 기자 |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왜 하필이면 6월 말 체결을 목표로 추진됐느냐 여부도 관심거리다. 공교롭게도 일본이 원자력 관련법을 개정, 핵 무장의 길을 튼 미묘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김 국방장관이 지난 5월 중순쯤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를 만나 “국회에 설명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약속한 점을 미뤄 보면 ‘밀실 추진’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6월 말 협정 체결을 목표로 한 것은 의문이다. 박 원내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장관에게 (협정체결을) 따졌더니 좀 급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외교장관은 이에 대해 “양국이 지난해부터 논의를 하면서 올해 상반기 중으로 끝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협정을 밀어붙인 이면에는 상반기를 넘기면 7∼8월 일본 방위백서가 발표되고, 8월에는 광복절로 국민감정이 악화한다는 점을 고려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8월부터 사실상 대선 국면에 돌입하는 정치 일정도 감안한 듯하다. 이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이와 관련해 5월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협정 체결의 교감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국방부가 실무 차원에서 협정체결 작업에 뛰어들었다”며 “불발되긴 했으나 한·일 정상 간 협의를 지원하기 위한 장관급 회담이 추진된 것도 이 무렵”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국방부 한 간부가 김 국방장관에게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처리 문제 등 양국 간 관계가 껄끄러운 상태에서 서둘러 군사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뜻을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 기획관은 당시 베이징에서 한·일 군사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적극 설명했다. “정보보호협정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안보위협 발생 시 긴밀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라며 “구태여 지금 맺는 것이 새삼스럽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과거 불편한 외교 때문에 걱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한·일 간) 안보목표가 거의 같아 필요하다”고도 했다.
◆향후 협정의 운명은
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 협정의 절차상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국회 설명 절차를 거쳐 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협정은 이미 러시아를 비롯한 24개국과도 체결했고, 앞으로도 중국과의 체결이 필요한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협정”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희망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는 협정 폐기를 주장하는 등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대선을 앞두고 민심이 좋지 않은 협정을 여당이 선뜻 추진하기도 부담스럽다. 새누리당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협정 절차의 문제에 유감을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단독으로 협상 체결을 강행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김청중·김동진·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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