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이야기] 수공으로 만든 명품 스포츠 세단 ‘벤틀리’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했고 세계의 화약고 발칸반도가 폭발하면서 1차세계대전의 씨앗이 탄생했다. 바로 이때 영국의 벤틀리 형제는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는 기계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꿈만 같던 시절이었다. 미국 오하이오의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든 소식이 유럽까지 알려졌고 1908년에는 직접 유럽을 찾아온 라이트 형제가 비행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 영국 크루에 위치한 벤틀리 공장

월터 벤틀리와 호레이스 벤틀리 형제가 ‘벤틀리 모터스’를 설립한 것은 1912년의 일이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한 지 20여 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수십 마력에 불과한 엔진으로 모터 스포츠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절이었다.

벤틀리 형제의 ‘벤틀리 모터스’는 수입차를 판매했다. 바다 건너 프랑스의 자동차를 수입했지만 자신들의 독자 모델을 개발하고 싶었던 형제는 프랑스 ‘도리오, 프랑드랑 & 페런Doriot, Flandrin & Parant(DFP)’의 엔진을 들여와 자동차 경주에 참여했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거두자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 수제작으로 차를 만드는 벤틀리 공장의 옛날 모습

▶ 수제작으로 차를 만드는 벤틀리 공장의 모습

영국의 명차 벤틀리는 형제의 노력으로 탄생했다. 최초의 벤틀리는 1919년 ‘3리터’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10월 열리는 런던모터쇼에 첫 등장한 ‘3리터’는 모형 엔진을 장착했다. 엔진의 완성이 덜 됐기 때문이다. 두 달이 지난 12월 마침내 엔진까지 완성된 ‘3리터’가 제작됐고 이 차로 1922년 인디아나폴리스 500마일 레이스에 참가해 평균속도 80마일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1920년대는 벤틀리의 시대였다.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1924과 1927년에 ‘3리터’로 우승했고 1929년, 1930년에는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6.5리터’로 우승컵을 거머줘었다. 작고 경량의 레이싱카를 선보이던 부가티를 비롯한 당대의 자동차 메이커와 달리 벤틀리는 크고 강력한 차를 모토로 스포츠카 드라이버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 벤틀리의 시련, 롤스로이스와 합병

크고 강하고 아름다운 수제작 차 벤틀리에게 시련은 일찍 다가왔다. 1929년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공황이 벤틀리에게도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1931년 11월 롤스로이스에 합병되면서 명품 스포츠카의 역사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롤스로이스는 벤틀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수제작으로 만드는 명차인데다 강력한 파워를 갖췄으니 롤스로이스의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유였다.

롤스로이스와 합병 후 벤틀리는 1935년 ‘3과1/2리터’를 비롯한 몇 개의 모델을 내놓지만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 크루(Crewe) 공장과 수제작

벤틀리는 사업 초기부터 수제작을 고집했다. 당시는 모든 차가 수제작으로 만들어지는 게 일반적이어서 그랬긴 했지만 상당히 손이 많이 가고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코치빌더’라고 불리는 당시 자동차 제작업자들은 마차를 직접 손으로 만들다가 자동차를 만들게 된 경우가 많았다. 동력원이 내연기관으로 바뀐 것일 뿐 나머지 구조물은 동일했기 때문이다.

▶ 벤틀리의 영국 크루 공장에서 생산하는 엔진

▶ 도색과정 등 일부 공정만 자동화 한 벤틀리 공장의 모습

벤틀리가 독특한 점은 지금까지도 이 방식을 유지한다는데 있다. 벤틀리 최고급 모델 뮬산의 제작에는 무려 300시간이 걸린다. 인테리어 제작에만 170시간이 들어간다. 즉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하는 현대인의 스케줄로 계산하면 벤틀리 뮬산 한 대를 만드는데 무려 7주의 시간이 걸리고 인테리어만 4주가 걸린다. 현대의 자동차 공장이 불과 10분에 한대씩 차를 내놓는데 비하면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다.

▲ 폴크스바겐과 벤틀리

1998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에서 벗어나 독일 폴크스바겐으로 넘어간다. 영국차가 독일로 넘어가 많은 영국인들이 안타까워했지만 오히려 벤틀리에는 백 년만의 성공을 이룬 초석이 됐다.

폴크스바겐의 플랫폼을 활용하고 수제작이라는 꼼꼼한 방식으로 태어난 명차 벤틀리는 2006년 컨티넨탈 플라잉스퍼와 컨티넨탈 GT를 내놓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벤틀리가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이유는 독특한 명품이란 특징에 있다. 모든 차가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요즘, 수제작 차에 대한 열망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114종의 외장 색상, 24종의 가죽, 9종의 베니어 색상, 21종의 카펫까지 벤틀리 하나를 주문하는데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엄청나다. 옵션의 내용도 에어백을 추가하고 오디오를 바꾸는 수준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차를 만들어내는 형태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한 유명 디자이너가 평소 본인이 사용하는 형광펜 색으로 차를 꾸며달라고 요청하자 벤틀리의 수제작 시스템은 그 색상을 재현해냈다.

내장재의 품질도 현대 자동차 공업의 관점에서 보면 혁신적이다. 최고급 차 뮬산에 들어가는 가죽이 소 15마리에 달하는데 벤틀리는 울타리에 가둔 소가 아닌 방목한 소만 사용한다. 혹여나 소가 울타리에 부딪혀 상처가 남았을까 우려해서다. 이렇게 관리한 가죽을 수작업 바느질로 꼼꼼히 만든 차가 바로 벤틀리다.

▲ 벤틀리 코리아의 질주

▶ 벤틀리 컨티넨탈GT

명차 벤틀리가 한국 시장에서도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간 102대의 판매실적을 올리며 2006년 한국시장 진출 이후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럭셔리 쿠페 ‘뉴 컨티넨탈GT’와 플래그십 세단 ‘뮬산’이 36대를 차지해 수 억 원을 호가하는 초고급 세단에 강자로 자리 잡았다. 벤틀리코리아의 딜러 벤틀리서울은 송파구 문정동에 471평 규모의 서비스센터를 신축하고 마케팅과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이다일 기자 [e-mail]

- 주요사항 -

회  사  명  폴크스바겐 그룹, 벤틀리(브랜드명)
설  립  일  1919년 (벤틀리모터스 Ltd., 1931)
설  립  자  월터 벤틀리, 호레이스 벤틀리
본       사  영국, 크루
인수합병  (1919∼1931) 롤스로이스
                  (1998∼현 재) 폴크스바겐 그룹
고용인원 3726명(2010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