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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무형문화재…한민족의 혼이 사라진다] <2>생활고 겪는 인간문화재

관련이슈 위기의 무형문화재…한민족의 혼이 사라진다

입력 : 2010-01-26 09:36:37 수정 : 2010-01-26 09: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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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들어… 금속장식 장인, 자물쇠를 고치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 상당수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무형문화재의 개념이 형성되기 수십년 전부터 어렵게 문화재 지킴이로만 살아온 탓이다. 이들의 생활고는 무형문화 전승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히 수요가 거의 없는 공예 관련 기능보유자들은 정부 지원금 외에 생활을 이어나갈 수단이 없어 자존심을 버리고 일상용품 제작에 매달리기도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효과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인간문화재 개인에게만 책임을 미루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생계 어려워 자물쇠 수리까지=“고장 난 옛 자물쇠라도 수리해야 담뱃값을 벌죠.” 목가구·건조물에 붙여서 결합 부분을 보강하거나 여닫을 수 있는 자물쇠 등의 금속제 장식을 만드는 두석(豆錫)부문 인간문화재 김극천(60)씨. 경남 통영시 ‘통영공예전수교육관’에서 작업 중인 그의 주위에는 온갖 금속 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장기’인 두석이 아니라 작은 비녀였다. 전통 굿을 시연하는 전수자에게서 주문받은 것이다. 지난달에는 검무에 사용되는 칼을 만들었다. 가끔은 마을 사람들이 오래된 자물쇠를 가져와 수리를 부탁하기도 한다. 김씨는 “먹고살려면 자존심을 버리고 이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며 “정부가 매달 130만원씩 지원금을 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어 생활비를 벌다 보면 4대째 내려온 기능을 연마하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 기능보유자 김극천씨가 지난 11일 경상남도 통영시 공예전수교육관에서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나마 김씨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집이 있고 아내도 틈틈이 누비옷을 만들어 생활비를 보태 나은 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수자에 머물고 있는 아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올해 31세인 아들은 이수자가 된 지 5년째다. 이수자가 윗단계인 전수조교로 올라서려면 앞으로도 10∼15년을 더 배워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바쁘다. 문제는 아들이 나중에 기능보유자가 되더라도 지금의 자신이 겪고 있는 생활고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이다.

두석은 주로 나전칠기 등의 장식으로 들어가는데, 40여년 전만 해도 큰 공장에 30명 이상이 일할 정도로 사정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1년에 겨우 두세 개 만들어 팔 뿐이다. 그는 “기능이 끊길까봐 아들에게 두석 제작 기술을 가르쳤지만 자신있게 이 일에만 전념하라고 말하지는 못한다”며 “어차피 보유자로서만 생활을 영위할 수 없으니 다른 일도 할 수 있으면 하라고 충고한다”며 씁쓸해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대나무 발 기능보유자 조대용씨가 지난 11일 경상남도 통영시 공예전수교육관에서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대나무 발 제작 기능보유자(염장)인 조대용(61)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조씨는 주거환경이 아파트 위주로 바뀌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 그나마 발을 걸어놓은 집도 대량으로 생산된 합성 플라스틱 발을 사용한다. 가로 140㎝, 세로 180㎝의 대발을 만들자면 평균 100일이 걸린다. 값은 약 800만원. 하지만 이러한 대형 발은 거의 팔리지 않고 이보다 작은 200만원 정도의 발을 1년에 두세 점 팔 뿐이다. 그는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웬만한 집에는 발이 다 있어 수요가 괜찮았다”며 “지금은 발을 파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 집에서 세탁소를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기능보유자는 “생활비 때문에 직업을 겸하려고 해도 30년 이상 연마해온 문화재에 대한 자부심과 다른 기술을 배울 시간이 없어 쉽지 않다”며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들에게 가르치고 있지만 따로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한다”고 고백했다.

◆국가지원금도 ‘쥐꼬리’=정부는 인간문화재에게 매달 ‘전승지원금’ 130만원씩을 지급한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00만원씩 지급하던 것을 2009년 들어 30만원 올렸다. 이외에 매년 무형문화재 공개 지원행사 보조금으로 400만∼500만원이 나오고, 기능 분야에서는 재료 구입비를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일정액을 지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승지원금의 경우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2008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3인 가구 이하 389만4709원, 4인 가구 427만6642원, 5인 가구 438만4491원이었다.

2남1녀를 둔 한 인간문화재는 “작품만 만들어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됐는데 100만원 조금 넘는 지원금으로 전수 교육과 가정 생활을 동시에 유지하라는 것은 빈곤을 되풀이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간문화재들은 국가가 ‘전승지원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승교육을 하려면 재료비와 작업실 운영비 등이 필요하지만 현재 지급되는 금액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수입이 거의 없는 상당수 인간문화재는 지원금을 생활비로 사용하는 실정이다.

인간문화재 송모씨는 “대학만 하더라도 교재비 등 수업에 필요한 경비를 직접 조달하는 교수가 어디 있느냐”며 “전통문화를 어렵게 지켜온 인간문화재뿐 아니라 전수조교, 전수장학생들을 예우하는 모습을 보면 국가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 팀장, 안용성·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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