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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석의 진료실 옆 영화관] ­'바스터즈:거친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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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1-19 22:14:31 수정 : 2009-11-19 22: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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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출중했던 여성감독… 너무 불온했던 나치사상 가슴에 일장기를 단 손기정 선수가 결승선을 맨 처음으로 끊고 시상대에 오르는 장면. 우리를 매우 숙연케 하는 이 시상식 장면은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인 ‘올림피아’에서 나온 것이다. 1938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기도 한 이 영화 감독은 20세기 가장 뛰어난 여성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레니 리펜슈탈이다.

부상으로 무용수 생활을 접은 뒤 주로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당시 정치 신인이었던 히틀러와 교감하게 되고, 곧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를 만든다. ‘의지의 승리’는 1934년 3일간의 나치 전당대회를 담은 기록영화이지만, 카메라 48대와 스태프 120명, 그리고 비행기까지 동원된 그야말로 당대 최고 블록버스터였다. 평화로운 독일 거리에 놀러온 것처럼 마냥 즐거워 보이는 병사들 위로 나치 깃발이 펄럭인다. 히틀러를 줄곧 아래에서 위로 잡아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드러내지만, 카 퍼레이드에서는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스타와 같은 친숙함도 보여준다. 그리고 작은 소녀를 안은 여자는 히틀러에게 꽃을 건넨다.

이 영화는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 나치에 대한 결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 이 영화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는 미국이 1950년대까지 모든 미군에게 이 영화 관람을 금지했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리펜슈탈은 ‘당연히’ 전범재판소에 회부됐지만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 후 리펜슈탈이라는 이름은 천재적인 영화적 성취에 경도된 사람들과 그 영화가 남긴 명백한 정치적 해악에 전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한마디로 나치를 총으로 난사하고 불태우고 폭파해버리는 영화다. 특이한 것은 이들을 영화관에 몰아놓고 영화의 이름으로 처단한다는 점이다. 독일군 촐러 일병(다니엘 브륄)은 적군 150명을 혼자 사살한 사건을 담은 선전영화 ‘민족의 자랑’에서 직접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전쟁영웅에 이어 무비스타가 된 이 일병은 쇼사나(멜라니 로랑)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시사회를 쇼사나의 극장으로 변경해 버린다.

시사회에서 자신이 수많은 적군을 죽이는 장면에 마음이 불편해진 일병은 위안을 받기 위해 영사실의 쇼사나를 찾아가고 이제 곧 자신의 야심작을 상영해야 하는 쇼사나는 질척거리는 남자를 향해 총을 쏜다. 곧바로 그녀는 자신을 좋아하다 총을 맞고 쓰러진 이 순진한 독일군에게 애틋한 마음이 든다. 또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고 드디어 쇼사나가 직접 출연한 영화가 상영된다. “마르셀, 불을 붙여!”

이 영화에서 리펜슈탈의 이름은 여러 번 호명된다. 리펜슈탈은 무혐의로 풀려나서 101세로 죽을 때까지 레인 중위가 독일군 이마에 새겨놓은 것처럼 평생 나치 협력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영화 필름은 순식간에 타오르는 위험한 것이다. 나치는 역사상 가장 먼저 영화의 파괴력에 주목했고 가장 성공적으로 그것을 활용했다. 리펜슈탈이 특별했던 것은 그의 영화적 능력이 너무나 출중했던 데 반해 그가 한때 빠져들었던 나치 사상은 너무나 불온했다는 것이다.

필름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디지털 시대이다. 또 다른 리펜슈탈이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시대를 위해서도, 그 천재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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