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느냐는 논란에서 핵심은 미국이 ‘핵 폐기’에서 ‘비확산’으로 북핵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북핵 협상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현실적인 목표를 ‘비확산’에 두기 시작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부채질한 것은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올해 1∼2월호 외교지 기고문에서 “북한은 수 개의 폭탄을 제조했고, 이란은 핵보유국의 일원이 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으며, 미 CIA 국장에 지명된 리언 패네타 전 백악관 비서실장도 상원 정보위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2006년 핵무기를 폭발시켰다”고 말했다.
또 미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는 지난해 11월25일 ‘2008 합동작전 환경평가보고서’에서 “아시아 대륙 내에는 이미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그리고 러시아 등 5개의 핵보유국이 있다”고 했으며, 비슷한 시기 미 국가정보위 보고서 ‘글로벌 트렌드 2025’는 “향후 북한과 같은 핵무기 국가에서의 불안정한 정권교체 혹은 붕괴 가능성을 감안 시, 약소국들이 과연 핵무기를 통제하고 지켜낼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당장 국내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외교 채널로 “북한을 핵 국가로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미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며, 이런 정책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전했다.
우리 정부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국의 정책이 북핵 폐기에서 북핵 비확산으로 바뀐다는 것은, 현재 진행되는 북핵 6자회담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12일 “우리의 머리 위에 핵을 가진 북한을 놓고 언제까지가 될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며 “미국도 여러 차례 밝혔듯이 미국의 핵 안보정책에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의 주장도 있다. 지난해 한미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에서 미 정·관계 인사를 접촉했던 한 인사는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도 지금 당장 북한의 핵을 없앨 수는 없는 만큼, 현실적인 우선순위를 비확산에 둬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며 “버락 오바마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기자 21s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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