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에 나온 그는 올해 제26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나긋나긋한 서정성을 깔아뭉개는 도발성과 연·행 구분이 없는 파격을 즐기는 건 여전하다.
첫 시집 ‘질 나쁜 연애’(2004)에서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하느니/ 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 가겠어”라고 내뱉었던 당돌한 모습도 변하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가 문 시인을 “한국 시사 최초의 여성 로커”라 지칭한 대로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팔뚝에 표범 문신을 새기고 열창하는 록가수를 떠올리게 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어깨에 표범 문신을 한 소년을 따라가/ 하루 종일 뒹굴고 싶어 가장 추운 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섹스를 나누다 프러시아의 스킨헤드에 끌려가 두들겨 맞아도 좋겠어”(‘검은 표범 여인’에서).
시집을 열자마자 여성의 욕망이 직설적으로 표출된다. 욕망은 검은 표범의 야성에 기대어 더 거칠고, 더 순수해진다. 문명이 욕망을 야만과 불결로 여겨 싹을 쳐버리는 것과 반대다. 시인은 시집에 야수를 떼로 풀어놓아 인간의 억눌린 본능을 되살리고 있다.
“청담동 표범약국에는 표범약사가 있지/ 멸종된 줄로만 알았던 표범약사가/ 하얀 가운을 입고 인터넷을 하다가/ 귀찮은 듯 안약을 카운터에 슬쩍 밀어 주지”(‘표범약국’에서).
“표범약사는/ 가로수 가지에 시체를 걸쳐 두고/ 머리부터 살점을 깨끗이 발라먹기 시작했다// 겨우 겨우 피의 위안으로/ 문명을 견뎌내는 표범약사”(‘표범약사의 이중생활’에서).
‘표범약국’ ‘표범약사의 비밀 약장’ ‘표범약사의 이중생활’ 세 편의 연작시는 문명과 야성의 충돌을 그린다. ‘표범약사’가 준동하는 곳은 세련된 부촌 청담동. 약국은 위생과 치유의 역할을 팽개치고 마취제, 발정제를 판다. 흰 가운을 입은 약사는 낮 동안 “약국에서 조신하게 약을 팔지만”, 밤이면 살의를 품고 가로수 꼭대기에서 사냥을 준비한다. 표범 털·이빨·은신처 등이 흰 가운·조신함·약국과 대비되며 인간에게 내재한 맹수본능을 보여준다.
시집에는 표범을 비롯해 시베리아 호랑이 등 맹수가 자주 출현한다. 인간의 살을 달게 씹는 악어, 백상아리, 검독수리가 등장해 피에 주린 이빨과 눈을 번뜩인다. ‘시베리아의 밤’은 호랑이가 발산하는 절대 공포를 매혹적으로 표현하고, ‘백상아리 레퀴엠’은 야성적인 죽음을 찬양한다.
인간이 야생동물의 사나움을 동경하는 이유는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서다. 표범, 사자,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는 일은 힘에 대한 욕망이자 열등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문 시인의 시에서는 야생을 꿈꾸지만 차마 문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몸부림이 읽힌다.
여성의 욕망을 힘주어 표현하는 행위 역시 여성의 본능만 죄악시하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새된 목소리는 현대인을 불쾌 속으로 몰아넣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달래는 기능을 한다. “내 시가 마음껏 울부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작은 위로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한 시인의 말과 맥이 통한다.
최승호 시인은 “그의 시는 방어적이기보다는 공격적이고 도발적”이라면서 “대담한 성적 표현, 억압적인 제도에 반기를 드는 불온한 진술을 구사하는 시는 미지근하거나 밋밋하지 않다”고 평했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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