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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의 오지기행]<7>쓰가루 반도 기행

입력 : 2007-10-26 15:55:00 수정 : 2007-10-26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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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는 갔지만 문학의 향기는 남아 나는 지금 일본 혼슈의 북단 쓰가루(津輕) 반도 280번 국도를 자동차로 달리고 있다. 이 길은 마쓰마에(松前)가도, 혹은 오슈(奧州)가도로도 불린다. 이곳은 일본의 오지 중 오지다. 에도시대부터 일본의 많은 여행자들이 국토의 최북단을 보기 위해 다녀간 길이기도 하다.

오른쪽으로 시모기타 반도가 바다 위에 떠 있고, 왼쪽으로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산맥에는 아오모리(靑森)라는 지명에 걸맞게 삼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다.
이번 여정은 일본의 대문호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의 소설 ‘쓰가루’의 무대를 따라가는 일종의 문학기행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사양(斜陽)’, ‘인간실격’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다. ‘쓰가루’는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고향인 쓰가루 반도를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이기도 하다.
여행의 안내를 맡은 분은 소설 ‘쓰가루’ 문학관 관장을 지낸 야나기사와씨다. 그는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 액자를 들고 여정에 합류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와 함께 쓰가루 반도를 여행할 겁니다.” 쓰시마 슈지는 다자이의 본명이다. 이곳 사람들의 작가에 대한 관심은 사랑을 넘어 종교에 가까웠다.
아오모리에서 40여분 해안선을 따라 달리자 가니다(蟹田)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간란산(觀瀾山)에 올랐다. 산이라기보다 항구에 면한 작은 언덕이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한적한 어촌이었다. 동쪽으로 펼쳐진 아오모리만에서는 게가 많이 난다고 한다.
언덕에 다자이의 문학비가 서 있고 바위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그는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했다.”
◇소설 ‘쓰가루’에서 다자이와 유모 다케가 만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로 꼽힌다. 다자이와 유모가 재회한 장소에 두 사람의 동상이 서 있다. (왼쪽)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이 자랑하는 ‘아오모리의 개’.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으로, 높이가 8.5m나 된다.

소설에는 그의 고향 친구 T군이 자주 등장한다. 안내를 맡은 야나씨는 T군의 딸인 후미코가 고향 친구라며 다자이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들려줬다. 그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닷피자키(龍飛崎)까지 왔다.
쓰가루 반도의 끝이자 혼슈의 북쪽 끝인 닷피자키. 사실 혼슈의 실질적인 최북단은 동쪽 시모기타 반도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닷피자키를 혼슈 최북단으로 여기고 있다. 옛날부터 홋카이도로 떠나는 배들이 이곳에서 출발했고, 시모기타 반도에는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닷피자키에는 등대 하나가 외롭게 서 있고, 쓰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홋카이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땅 밑으로는 홋카이도까지 이어지는 세계 최장의 세이칸 터널이 지난다. 등대 아래에 노래비 하나가 세워져 있다.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다자이 오사무 문학관. 쓰가루 반도의 대지주였던 다자이의 아버지가 1906년 지은 저택으로, 한때 여관으로 사용됐다. (위)
◇다자이 오사무 문학관에 있는 난로.

“바람소리가 가슴을 흔들어 울 수밖에 없는 아∼아 쓰가루 가이쿄 후유게시키.”
해질녘, 쓰가루 반도 끝에서 듣는 유행가 가락이 여행자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길은 이제 서쪽으로 나 있다. 이곳에서 고도마리(小泊)까지 이어지는 30여km의 길은 쓰가루 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다. 쓰가루의 후지산이라 불리는 이와키산(1625m)이 바다 위에 섬처럼 보인다.
일본의 지리학자 고쇼켄(1726∼1807)은 그의 유명한 여행기 ‘동유잡기’ 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와키산 자락에는 쌀과 미인이 많이 난다. 또 저 산에는 수행하는 승려들이 많아 여자들이 산에 들어가는 것을 금했다. 수행에 방해가 된다면서….”
소설 ‘쓰가루’의 마지막 장소인 고도마리에 왔다. 다자이는 어릴 적 고향 집에서 자신을 키워 준 유모 다케를 찾아 이곳까지 온다. 어머니가 병약한 탓에 다자이는 유모 다케의 손에 성장하게 된다. 다자이에게 있어 다케의 존재는 어머니를 훨씬 뛰어넘는다. 소설에서 다자이와 유모 다케가 만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로 꼽는다. 다자이와 유모가 재회한 장소에 ‘쓰가루 문학기념관’이 있고 기념관 앞에 다자이와 유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고도마리를 뒤로하고 이제 다자이의 생가가 있는 가나기(金木)를 향해 출발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쓰가루 평야를 지나고 끝없이 이어진 붉은 사과밭을 지나 드디어 가나기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는 다자이가 쓴 200여권의 저서들을 시기별로 적은 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오모리현이 자랑하는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히로사키 출신의 예술가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이 가장 많이 전시된 곳으로 유명하다.

쓰가루 반도의 대지주였던 다자이 아버지는 1906년 이곳에 저택을 짓는다. 집의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하인들만 30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영화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집안 망신만 시킨다던 아들이 쓴 소설의 제목처럼 사양길에 접어들어 몰락했고, 한때는 여관이 되었다가 이제는 ‘다자이 오사무 문학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다자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히로사키(弘前)는 그의 고향 집 가나기에서 차로 30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있었다. 히로사키 시내에 다자이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커피숍 ‘만찬’(万茶ン)이 있다. 만찬은 3대에 걸쳐 그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가 즐겨 마셨다는 커피는 이제 ‘다자이 커피’라는 이름으로 이 가게의 명물이 되어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 그는 떠났지만 그의 흔적은 쓰가루 반도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가 늘 바라보았을 이와키산 자락으로 쓰가루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곳까지 액자 속 사진으로나마 함께 여행했던 그와 커피 한 잔을 함께하며 쓰가루 반도 여행을 접는다. 커피는 진하고 향기로웠다. 그가 남긴 문학의 향기처럼….
여행작가

≫여행정보

대한항공의 인천∼아오모리 노선은 화·수·금·일 주 4회 운항한다. 아오모리에 가면 꼭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에 들러보길 권한다. 미술관 중앙의 거대한 ‘아레코’ 홀은 전시 공간이 사방 21m, 높이 19.5m나 된다. 이곳에 샤갈이 오페라의 배경화면으로 그린 ‘아레코’ 네 점 중 세 점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은 아오모리 공항에서 자동차로 20분, 시내에서도 버스나 자동차로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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