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은 지도를 보면 ‘뼈다귀’처럼 양끝의 동서 폭이 2㎞ 정도로 두툼하고 중간 폭은 1㎞ 정도여서 걸어서 15분이면 섬 다른 편으로 갈 수 있는 특이한 형태다. 남북의 길이는 약 9㎞인데 서쪽 해변 중간에 약 7㎞의 화이트 비치가 있다. 이곳의 모래는 너무도 고와서 살에 닿는 순간 고운 밀가루처럼 느껴진다. 하늘 높이 치솟은 코코넛나무 그늘 아래 누워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보며 게으름을 피우다가 코코넛 오일 마사지를 받아 가며 살갗을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는 순간, 왜 이곳이 ‘천국에 가까운 섬’이라 불리는지를 알게 된다.
그 바닷가에 누워 뒹굴다 보면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토록 바쁘게 살아왔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더 바쁘게, 더 많이를 외치며 살아가지만 호흡은 점점 가빠지고 스트레스는 더 쌓인다. 최소한의 먹을 것만 확보하기 위해 땀 흘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마시고 춤추고 사랑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자신의 삶과 현대 문명에 회의하다가 조국도 잊고 모국어도 잊은 채 이 섬에 숨어버리는 서양인들도 있었고, 한국인 중에도 보금자리를 틀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벗 삼아 한가로운 삶을 살아간 이들이 있었다.
이곳은 해양 레포츠의 천국이기도 하다. 보트를 타고 섬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스노클링과 스킨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아름다운 바다 속을 구경한다. 또 작은 돛단배를 타고 뱃놀이를 하거나 보트로 윈드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보라카이 해변의 즐거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곳에 오면 낙조를 꼭 봐야 한다. 저물녘 온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낙조 앞에서 사람들은 말을 잃고 넋을 잃으며, 다만 떨리는 가슴으로 위대한 대자연을 찬미한다. 밤이 되면 보라카이는 더욱 흥청거린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수많은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는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값싸고 푸짐한 해산물 요리에 맥주를 마시면서 라이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필리핀인들의 노래 솜씨는 대단한데, 표정이 딱딱한 필리핀 남자들에게서 나오는 노랫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감미롭다.
또 디스코텍에서 밤새도록 술 마시고 몸을 흔들다가 흥에 겨워 밤바다로 나와 하늘을 보는 순간, 탄성을 터뜨리지 않는 이가 없다. 보석처럼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은 너무도 낮아 보여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하늘로 치솟은 코코넛나무를 타고 오르면 하늘에 다다를 것만 같다. 가끔 그 환상적인 풍경에 취해 옷을 다 벗고 바닷가를 스트리킹하는 이들도 있다.
보라카이 섬에 해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섬에는 약 1만명 정도의 주민이 살아서 마을도 있고 학교도 있고 시장도 있어서 해변의 휴식이 지루해질 때쯤 마을이나 시장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을 사귀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즐거운 보라카이 섬이지만 예전의 한적한 해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관광지화로 변한 번잡한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밤이 되면 손님을 찾는 성매매 여성들 혹은 게이들도 보이고, 경쟁이 붙은 스킨스쿠버 업소 사이에서 당황하는 여행자들도 보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세계의 어느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보라카이 섬은 여전히 ‘천국에 가까운’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환상적인 휴양지임에 틀림없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해변서 춤추는 무희 알고보니 트렌스젠더
◆여행 에피소드
필리핀에는 이상하게도 트렌스젠더들이 많은 편이다. 보라카이 섬에서도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서 춤을 추는 여인이 있었다. 낙조에 붉게 물든 바닷가에서 혼자서 환희에 차 춤을 추는 여인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트렌스젠더였다. 음성도 남자처럼 허스키했고 얼굴에서도 어딘지 남성스런 모습이 풍겼지만 몸매는 완벽한 여인이었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그녀는 종종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질주했는데, 자신이 여자로 다시 태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좋아 보였다.
그러나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삶을 사는 트렌스젠더들도 보였다.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목격한 것인데, 밤늦게까지 웬 한국인과 필리핀 여인이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중에 현지인들이 알려주기를 그녀는 성매매를 하는 트렌스젠더라고 했다. 내가 한국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지금 당신 친구가 아프니 빨리 가보라고 ‘거짓말’을 해서 빠져 나오게 한 적도 있었는데, 보라카이는 관광지다 보니 이런저런 사건이 일어난다.
아름다운 낙조… 아, 사랑하고 싶다
◆여행정보
비수기는 우기인 6월에서 11월, 성수기는 건기인 12월에서 5월 사이다. 하지만 우기 때도 항상 비가 오는 게 아니라서 종종 낙조를 볼 수도 있다. 보라카이까지 가는 길은 조금 불편하다. 인천에서 마닐라까지 비행기로 3시간30분, 마닐라에서 칼리보(Kalibo) 공항까지 다시 비행기로 1시간, 그곳에서 버스로 카티클란(Caticlan)까지 약 1시간30분, 거기서 오토바이차 트라이시클을 타고 근처 항구까지 가서 대나무를 엮어 만든 엉성한 배 ‘방카’를 타면 약 15분 후에 보라카이섬에 도착한다. 마닐라에서 카티클란까지 직접 경비행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복잡한 것 같지만 한국에서 칼리보까지 가는 비행기를 모두 예약한 후 마닐라 공항에서 갈아타면 편리하다. 그리고 비행기나 버스에서 내리면 준비하고 있던 호객꾼들이 다가오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다. 최고급 호텔, 리조트 등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게 좋고,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저렴한 코티지, 1만∼3만원 정도 하는 중급 숙소들은 현지에서 직접 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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