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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복자살 일본 극우작가 소실 영화본 발견

입력 : 2005-09-25 10:53:00 수정 : 2005-09-25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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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보수우익의 상징으로 불리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ㆍ1925~1970)의 유작 영화필름이 발견됐다.
35년전 일본 자위대의 궐기와 군국주의 부활을 외친 뒤 할복자살했던 미시마의재평가 작업이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실됐던 미시마의 영화필름의 발견은 일본 보수우익 집결의 또다른 계기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 최신호는 25일 미시마가 각본, 주연, 감독을 도맡았던 1965년작 영화 `우국(憂國)''의 필름이 최근 도쿄 미시마의 옛 자택 지하실에서발견됐다고 전했다. 미시마 책을 펴냈던 출판사 신조사(新潮社)는 이 필름을 DVD로 제작, 미시마 전집 부록으로 제공키로 했다.
영화 `우국''은 미시마가 우익 작가로 변신을 시작한 자신의 동명 단편소설을 토대로 만든 30분짜리 단편 흑백영화로 미시마는 여기에서 지난 1936년 2.26 쿠데타의주동인물인 육군중위 무라야마 신지(武山信二)로 분했다. 당시 무라야마 등 일본군 청년장교들은 `존황(尊皇)''을 기치로 내걸고 기관총과소총으로 무장, 각료들을 사살한 뒤 의사당과 경시청, 육군성 등을 점거했으며 쿠데타 실패후 무라야마는 사무라이식으로 할복 자살했다. 영화제작 5년후 미시마는 결국 영화 내용과 비슷한 할복자살을 실행에 옮겼다.
미시마는 1970년 11월25일 도쿄 육상자위대 동부총감 사령관실에 추종자 4명과함께 난입해 발코니에서 총감을 인질로 잡고 자위대원 1천명을 소집한 뒤 "너희는사무라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왜 지키고 있단 말인가"라며 궐기를 외쳤다. 그러나 야유와 경멸만이 터지자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더니 갑자기 사령관실로들어가 일본도로 배를 갈랐다. 이어 추종자가 목을 쳐주는 사무라이 식으로 목숨을끊었다.
사건후 미시마의 부인 요코(瑤子)는 정부 당국에 남편을 자살로 몰고간 영화 `우국''의 모든 사본 등 동영상 기록을 수거해 불태워주길 요청했고 이에 따라 영화 `우국''은 일본에서 사라졌다. 영원히 소실된 줄 알았던 우국은 그러나 한 영화인의 집념과 끈기로 다시 햇빛을 보게 됐다. 우국 제작을 맡았던 후지이 히로아키(藤井浩明)는 당시 미시마의 부인에게 필름한편만을 보존해줄 것을 요청했고 동의를 얻어 필름 한편을 차상자에 밀봉, 부인에게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후 지난 96년 미시마의 부인이 사망한 뒤 후지이는 남몰래 필름 소재지를 찾아다니다 최근에서야 지하실에 보관돼 있던 필름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전후 군국주의에 대한 혐오감과 할복자살이라는 충격적 결말 때문에 미시마 사건은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화제였으나 결국 일본 밑바닥에 흐르던 군국주의의 촉수를 건드려 미시마는 지리멸렬했던 보수우익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올해로 미시마 출생 80주년을 맞아 회고전 개최, 전집 완간, 미시마 문학 다시읽기 캠페인 등을 통해 미시마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한 것도 보수우익 세력의창궐과 무관치 않다. `우국''을 DVD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벌써부터 출판사에 일반인들의 판매 예약이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미시마 사건후 미시마가 생전에 조직한 ''방패의 모임(楯之會)''과 자위대간 커넥션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여론의 압력이 거셌던 과거 분위기와는 천양지차다. 미시마는 대표작 ''금각사''(金閣寺ㆍ1956)로 전후 일본 최고의 탐미주의 작가로올라선 뒤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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