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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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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2-06-21 14:47:00 수정 : 2002-06-21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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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서 어른세계로 모험 가득차 여행 이제 겨우 10세인 치히로가 낯선 시골로 이사가면서 통과한 터널은 일종의 통과제의다. 그것은 속(俗)의 세계에서 성(聖)의 세계로 전이되는 길목이고 이쪽과 저쪽을 구분지어 주는 하나의 상징이며 두 세계 사이의 충돌을 부드럽게 연결지어주는 완충장치다. 아무도 없는 거리. 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음식점들. 냄새를 먼저 맡고 일행들을 끌고 가는 사람은 아버지다. 그는 탐욕스럽게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음식을 발견하며 가족들에게 음식을 권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뻔뻔해진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낯선 세계에 쉽게 동화되고 적응하며 생존의 방법을 찾는다.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지자 지금까지 치히로가 본 세계와는 또다른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푸른 풀밭과 작은 계곡 위로는 거대한 물이 가득 차서 환하게 불밝힌 배가 강의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온다. 그 배에는 가면만 둥둥 떠다니는 유령들이 가득하다. 탐욕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던 치히로의 부모는 살찐 돼지로 변신하고 부유하는 귀신들의 휴양지인 이곳에서 치히로는 더 이상 인간의 냄새를 내뿜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휴양지의 중심 공간은 마녀 유바바가 지배하는 목욕탕이다. 목욕탕은 물과 불이 만나는 곳이다. 필요로 하는 것은 물이지만, 그 뜨거운 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물과 불에 관한 영화이다. 정화의 물과 욕망의 불. 탐욕스러운 욕망의 불을 다스리는, 깨끗하고 정갈한 물의 이미지. 세상은 정화되어야 할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 영화의 주공간인 유바바의 목욕탕은 거대한 물 위에 떠 있는, ''油屋''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집이다. 목욕탕 굴뚝에서는 쉬지 않고 검은 연기가 흘러나온다. 항상 유바바의 등 뒤 배경으로 등장하는 벽난로는 유바바를 욕망의 화신, 불의 이미지 속에 위치하게 한다. 그러나 치히로는 목욕탕의 때를 닦고 손님들을 위해 물을 채운다. 늘 그녀는 물과 함께 있다. 더러운 오물을 치히로는 열심히 청소하고 깨끗한 약수를 붓는다. 물의 정화작용은 어떤 더러움도 씻어낸다.
갈 수만 있고 되돌아올 수는 없는 기차. 그 기차를 타고 ''늪의 바닥'' 역을 향하여 가는 치히로. 늪은 단단한 흙과 부드러운 물이 만나는 이미지이다.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의 밑부분은 투명한 물에 잠겨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은 경계에 있다. 물과 불, 이쪽과 저쪽, 단단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등장인물들은 떠돈다. 과연 ''늪의 바닥''을 지나 사라지는 기차의 앞 부분에는 ''중도''라고 있다. ''늪의 바닥'' 역을 출발하여 마녀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를 찾아가는 치히로의 모험에 가득찬 여행은, 보일러 아범이 지적했듯이 사랑에 의한 선택이다.
풍부한 시적 상징과 비유로 행간의 여백을 폭넓게 확장시키며 우리 앞에 꿈과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놓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평생을 지속하면서 쌓아놓은 이미지들을 충출동시켜 이 한 편의 영화에 집대성해 놓았다. 센과 치히로는 동인이명이다. 치히로는 유바바의 지배를 받으면서 센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그러나 치히로는 자신의 본명을 잊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온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은, 이름의 소중한 가치와 명예를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종이다. 유바바가 정령들의 휴양지를 통치하는 방법도 이름을 빼앗는 것이다. 다시는 빼앗기지 말자. 우리들의 소중한 이름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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