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개 또는 고양이에게 투약하는 펜벤다졸(fenbendazole) 성분의 개 구충제를 복용하고 ‘말기암을 완치한했다’는 검증되지 않은 소문이 돌면서 일각에선 해당 약이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건당국 일각에선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며 ‘절대 복용을 금지 할 것’을 강조했다. 대한약사회는 전국 회원약국에 판매 관련 주의를 당부 하기도 했다. 한 전문가는 “같은 원리의 항암제가 이미 사용되고 있다”며 구충제를 따로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이달 초 유튜브 채널 ‘월드빌리지 매거진TV’에선 ‘말기암 환자 구충제로 극적 완치, 암세포 완전 관해, 암환자는 꼭 보세요’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에선 개 구충제를 먹고 말기암을 완치했다는 60대 남성 조 티펜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영상의 조회수는 24일 기준 185만여회를 기록했다. 댓글도 4000여개가 넘게 달렸다.
영상에 따르면 조씨는 2016년 ‘말기 소세포폐암’ 진단을 받았고, 다음 해 1월 암세포가 간, 췌장, 위 등에 퍼져 3개월만 더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한 수의사가 그에게 ‘개 구충제를 복용하고 6주 만에 뇌암이 나은 환자 이야기’를 전하며 펜벤다졸 복용을 권했다. 이후 판벤다졸을 복용한 티펜스는 3개월 뒤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졌다고 한다.
펜벤다졸은 개나 고양이의 회충 등 내부 기생충을 잡는 데 쓰이는 동물용 구충제다. 한국에서는 동물용 약제로 허가를 받았다. 인간 구충제인 메벤다졸 등과 함께 벤조이미다졸계의 약제다. 벤조이미다졸계 구충제는 기생충의 피부와 장 세포에 있는 미세소관(세포의 구조를 이루고 세포 이동과 세포 내 물질이동에 관여하는 단백질) 단백질의 형성을 억제하는 특성을 가진다. 이 약에 노출된 기생충은 세포 기능이 떨어지며 생명 활동에 필요한 포도당을 흡수하는 능력이 약해지고 결국 굶어 죽게 된다.
이 같은 영상이 큰 주목을 받게 되자 누리꾼들은 해당 약을 구매하기 위해 애썼다. 암 환자들은 동물의약품지정약국뿐 아니라 동물병원까지 방문하며 약을 구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23일 “항암제로 허가받지 않은 펜벤다졸을 암환자는 절대 복용하지 말라”고 했다. 식약처는 “펜벤다졸은 사람 대상으로 효능·효과를 평가하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물질로, 사람에게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라며 “특히 말기 암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체력이 저하된 상태이므로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고 했다.

대한약사회는 20일 전국 회원 약국에 ‘펜벤다졸 성분’의 동물용의약품 판매 관련 주의를 당부했는데, 약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펜벤다졸은 항암활성에 대한 일부 연구 및 복용사례가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펜벤다졸을 암 치료제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항암활성에 대한 연구는 실험실 연구 혹은 동물실험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말기암 환자 사례 역시 펜벤다졸만 복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김대업 대한약사회 회장은 “암과 힘든 싸움을 하고 계신 환자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암을 치료할 목적으로 동물용의약품으로 허가된 제품을 임의로 복용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라며 “사람에 대한 부작용 사례 또는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복용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국내의 한 암 종양 전문가는 한 언론에 “펜벤다졸은 세포 분열을 억제해 기생충 성장을 멈추는 약”이라며 “같은 원리의 항암제 ‘탁솔’이 이미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어 굳이 효과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개 구충제를 쓸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동아사이언스가 줄리에 왓슨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교수 연구팀을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 2008년 미국 국제학술지 ‘미국실험동물학회지(JAALAS)’에는 이 팀이 연구한 “림프종을 이식한 쥐에게 펜벤다졸과 비타민을 함께 먹였더니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 실렸다. 다만 펜벤다졸을 단독으로 먹였을 경우에는 효과가 없었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사진=유튜브 채널, 온라인 커뮤니티, JTBC‘뉴스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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