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를 무장 대치 아닌 평화협력지대로
유엔 제5사무국,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용어일 수 있다. 통상 ‘유엔’이라고 하면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를 떠올릴 뿐 다른 이미지를 연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는 4개의 유엔사무국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엔 뉴욕본부(제1사무국)와 더불어 유엔 산하 국제기구를 총망라하다시피 하는 유엔 제네바본부(제2사무국), 핵확산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유엔 빈본부(제3사무국), 그리고 유엔환경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유엔 나이로비본부(제4사무국)가 그것들이다. ‘유엔 제5사무국’은 유엔의 다섯 번째 지역본부를 칭하는 편의상의 용어로,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설립될지 유엔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다.
유엔의 다섯 번째 사무국을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에 유치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디딤돌로 삼고, 동북아평화번영공동체의 기틀을 다지는 데 활용하자는 게 유엔 제5사무국 유치 운동의 근본 취지다. DMZ는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시작된 한반도 분단체제는 80년 세월이 흐른 202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안정적인 평화체제로 정립되지 못한 채 서로 적대하는 두 개의 국가로 고착돼 가고 있다.

남북한 사이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그 후속 조치들이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한 경제 및 문화 교류 협력으로 결실을 보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국내외 정치 정세가 달라지면 남북한 사이의 합의사항은 휴지 조각처럼 버려졌다. 남북한의 어느 한쪽이 제 맘대로 주무를 수 없도록 평화를 단단하게 보장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반도에 공간적·물리적으로 유엔 제5사무국이 실재한다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 사회의 외교적 무대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유엔 사무국들이 주요 사안에 대한 국제 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끌어내고 있는 것처럼 유엔 제5사무국은 한반도 평화·통일에 관한 쟁점, 북한의 핵개발을 비롯한 남북한 군비경쟁을 통제하는 방안, 동북아평화번영공동체 구축을 위한 외교적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 정세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합의사항의 이행 여부를 감독하는 유엔 차원의 외교 장치로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반도 미래와 한민족의 생존 차원에서 추진된 유엔 제5사무국 유치 운동은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됐다. 2014년 10월, 세계일보와 경기도 주최로 유엔 제네바 사무국에서 열린 ‘2014 한반도 평화 국제회의’에서는 유엔 제5사무국을 한반도 DMZ에 유치해야 할 필요성과 그 파급효과에 대해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당시의 콘퍼런스에는 경기도 행정부지사와 경기도 파주시장도 함께 참여해서 한반도 DMZ 접경지역에 유엔 제5사무국을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 후 유엔 제5사무국 유치운동은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천주평화연합 등의 NGO 활동을 통해 100만 서명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한반도 평화와 대한민국 국익 차원에서 추구해온 유엔 제5사무국 유치 운동이 최근 정치권의 로비 대상인 양 거론된 보도 내용은 운동 취지와 역사를 감안하면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민간 NGO와 DMZ 접경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관심과 역할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할 일이다.
유엔 제5사무국 유치는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고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도 없다.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한 필수재이자 공공재라는 사실뿐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엑스포를 유치하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유엔의 참전 결정이 없었다면 6·25 전쟁의 결과는 달려졌을 것이다. 유엔 제5사무국 유치는 유엔이 보증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다. 무장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DMZ를 국제평화협력지대로 변모시키겠다는 ‘담대한 구상’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돼야 한다. 남북한이 공동 외교를 통해 유치운동에 나서는 방안도 염두에 둬야 한다.
문병철 정치학박사·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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