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도 착륙에만 초점 맞춰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착륙사고를 놓고 미국 당국 조사가 조종사 과실 쪽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 측은 섣부른 결론을 경계한다면서도 기체 결함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삼가고 있다. 반면 사고기 조종석 대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착륙 고도가 지나치게 낮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충돌사고 직전까지 이상징후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알려졌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고도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고를 조사 중인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9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을 통해 사고기 조종사들이 착륙 당시 상공 500∼200피트(150∼60m)에서 고도가 너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바로잡으려 했다고 밝혔다. 조종사들이 미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착륙사고를 일으키기 34∼16초 전 이미 문제를 발견했음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NTSB는 그동안 브리핑을 통해 조종사 대화 내용 등을 통해 사고 7초 전 조종사 한 명(교관)이 “고도를 올리라”고 소리칠 때까지 아무런 이상징후가 없었다고 밝혔었다.
특히 NTSB는 사고기 두 기장이 착륙 준비를 하면서 권장 속도인 137노트(시속 254㎞)로 날도록 자동속도 설정기능(오토 스로틀)으로 설정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오토 스로틀이 켜져 있는데도 속도가 정상으로 유지되지 않았다면 조종사 과실보다 정비 불량이나 기체결함 여부 등이 거론될 수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세계 최대 조종사노조단체인 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는 이날 성명을 내고 NTSB가 조종석 대화 등을 공개한 건 시기상조로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NTSB가 부분적인 데이터를 잘못된 방식으로 공개했다”며 “이런 불완전하고, 맥락에서 벗어나는 정보는 사고 원인에 대한 수많은 억측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사고 당시 공항 계기착륙장치(ILS)가 꺼져 있었던 이유, 다른 착륙유도장치와 정밀진입경로지시등(PAPI) 가동 여부 등 사실 관계를 밝힐 것을 NTSB에 촉구했다.
우리 정부도 불만을 표출했다. 최정호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10일 오전 브리핑에서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정보는 미국이나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브리핑에서도 “NTSB나 우리 조사단이나 팩트만 발표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발언 공개가 적절한지는 조사단 협의와 판단을 거쳐 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미 언론도 사고 발생 당시부터 일방적으로 조종사들의 과실 쪽에 무게를 두는 분석기사를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사고 이튿날 인터넷판 기사를 통해 아시아나항공기가 최신 기술의 착륙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항공기의 기술적 문제에 따른 사고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사고기 기장의 비행경력 등을 문제 삼으면서 NTSB가 조종사들의 비행경험과 훈련방법 등을 조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전했다. 경제전문방송인 CNBC 인터넷판은 ‘한국 문화가 아시아나 항공기 충돌 사고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번 NTSB 조사단에는 사고기 제작사인 미 보잉사 전문가도 참여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박희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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